(전글 이어서) 대학 하나 옮기는 걸로는 부족함

시사

(전글 이어서) 대학 하나 옮기는 걸로는 부족함

윗마을아무개 0 37,097 09:30

원본글 : https://todayhumor.com/?sisa_1271111

 

 

(전글 이어서) 대학 하나 옮기는 걸로는 부족함, 그리고 댓글에서 나온 얘기들 정리함

먼저 전글 베오베까지 가서 감사함. 댓글 다 읽었고, 몇 개는 답 달았는데 못 단 것도 있어서 이어서 씀.


일단 이노콘~*님이 댓글에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할 때 그 근처에 대학신도시를 병행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하셨는데, 이게 사실 이번에 하고 싶은 얘기랑 정확히 맞닿아있어서 이걸로 시작해볼게임.

바다에 인공어초 하나 던져놓으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아심?

원래 아무것도 없는 맨 모래바닥이었음. 근데 구조물 하나 가라앉히면 거기에 해조류가 먼저 붙음. 그 해조류 먹으려고 작은 물고기, 어린 치어들이 몰림. 걔네가 숨을 곳도 생기고 포식자도 피할 수 있으니까 계속 모임. 그러다 보면 그 작은 물고기 잡아먹으려는 좀 더 큰 물고기도 오고, 결국 그 자리가 통째로 생태계가 됨. 실제로 이걸 노리고 만드는 게 인공어초 사업이고, "바다의 목장"이라고까지 부름.

대학도 똑같은 원리로 작동함. 아무것도 없는 지역에 대학 하나를 제대로 심으면, 거기로 어린 학생들(치어)이 몰림. 그 학생들 보고 원룸촌·상권·학원가가 생기고, 그다음엔 그 학생들 잡으려는(?) 기업·연구소까지 따라옴. 결국 아무것도 없던 자리에 도시 하나가 통째로 만들어지는 거임.

근데 여기서 한 발 더 들어가야 할 거 같음.

  1. 어린 물고기들이 몰리면, 숫자가 아니라 "밀도"가 무기가 됨

산호초에 어린 물고기들이 몰리면 그냥 개체 수만 느는 게 아님. 좁은 구역 안에서 서로 부대끼면서 먹이활동, 짝짓기, 서열 형성 같은 상호작용이 확 늘어남. 이 밀도 높은 상호작용 자체가 그 생태계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핵심 동력임.

사람도 똑같음. 젊은 애들 한곳에 몰려서 서로 부대끼고 소통하면 거기서 새로운 아이디어가 튀어나옴. 대학이 그냥 학생 숫자 채우는 곳이 아니라, 이 밀도로 창의성을 뽑아내는 장치인 거임.

근데 문제가 뭐냐면, 지금 한국 대학은 다 서울이라는 "이미 다 자란 늙은 도시" 안에 들어가 있음. 늙은 도시는 이미 질서, 서열, 부동산·상권 구조가 다 짜여 있음. 그러니까 학생들이 아무리 몰려있어도 결국 그 틀 안에서만 움직임. 뭔가 새로운 게 튀어나오려면 오히려 아무것도 안 정해진 "젊은 도시"가 필요함. 계속 크려면 이런 젊은 도시를 계속 새로 만들어줘야 함.

  1. 산호초도 다양한 종이 섞여야 강해짐 - 대학도 "여러 개"를 묶어야 함

산호초 생태계는 한 종만 있을 때보다 다양한 종이 섞여 있을 때 훨씬 튼튼함. 대학도 똑같음. 하나만 딱 옮기는 것보다, 성격이 다른 대학 2~3개를 한 지역에 묶어서 같이 보내는 게 훨씬 효과적임.

이게 실제로 대박 난 사례가 있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리서치 트라이앵글 파크(RTP)임.

1950년대에 노스캐롤라이나는 미국에서 제일 못사는 주 중 하나였음. 1인당 소득 남부 최하위권이었고, 대학 나온 애들은 다 딴 데로 튐. 지금 우리가 걱정하는 지방 청년 유출이랑 완전 판박이임.

그때 지역 리더들이 낸 아이디어가 "성격 다른 대학 3개(듀크대, UNC채플힐, NC주립대)를 하나의 삼각지대로 묶어서 그 한가운데 연구단지를 만들자"였음. 원래 따로 있던 학교 세 개를 물리적으로 가까운 삼각형 구도로 묶어놓고 공동 연구단지를 세운 거임.

1959년에 실제로 만들어졌고, 지금은 부지 7,000에이커에 입주 기업 300곳 넘고 고용 인원 5만 명 이상임. IBM, 시스코, GSK 같은 글로벌 기업이 다 들어와 있고, 여기서 나온 스타트업 중엔 34조 원에 팔린 레드햇도 있음. 지금 미국에서 인구 제일 빨리 느는 지역 중 하나임.

핵심은 이거임. 대학 하나만 덜렁 옮겼으면 이 정도 안 나왔음. 성격 다른 대학 세 개를 물리적으로 가깝게 묶어놨더니 학생·연구자들이 서로 넘나들면서 상호작용이 폭발적으로 늘었고, 그게 실리콘밸리 다음가는 혁신 클러스터를 만든 거임.

이노콘~*님이 말한 "반도체 클러스터+대학신도시 병행"이 딱 이 방향임. 클러스터 하나에 대학 하나만 붙이지 말고, 성격 다른 대학 여러 개를 같이 붙여야 상호작용 밀도가 차원이 달라짐.


그리고 천국의맛님이 남겨주신 지적도 짚어볼게임. 좋은 지적이라 그냥 넘어가기 아까움.

"학생들 입장에서 서울에 있는 대학이라는 것 자체의 네임벨류가 학과보다 크다"고 하신 부분 - 맞음. 그래서 위에서 계속 말한 게 "학과 하나만 뚝 떼서 보내는 게 아니라 여러 대학을 묶어서 그 자체로 하나의 새로운 네임벨류를 만들자"는 거임. 리서치 트라이앵글도 듀크대 하나 갔으면 그냥 "듀크대 분교" 취급받았을텐데, 세 학교를 묶어서 아예 "리서치 트라이앵글"이라는 새로운 지역 브랜드를 만들어버림. 한국도 그냥 "무슨대 지방캠퍼스"가 아니라 그 지역 자체를 새로운 이름의 교육특구로 브랜딩하는 접근이 필요함.

"비학기에 이탈하는 학생들, 대학생 문화 과집적 문제, 거점형 말고 기능별 다원화 노드형이 낫다"고 하신 부분도 일리 있음. 근데 이게 오히려 "여러 대학을 묶어서 보내라"는 얘기랑 같은 방향임. 대학 하나만 뚝 떨어뜨리면 방학 때 텅 비는 유령도시가 되기 쉬운데, 성격 다른 대학 여러 개랑 관련 산업까지 같이 묶어놓으면 방학 중에도 연구인력, 대학원생, 기업 종사자들이 남아있어서 그 공동화 문제가 완화됨. "거점형이냐 노드형이냐"는 설계 디테일 문제긴 한데, 최소한 "대학 하나만 달랑"보다는 "여러 기능을 묶어서" 가는 방향이 이 공동화 문제에도 더 낫다고 봄.


정리하면

그냥 서울대 하나 뚝 떼서 지방에 심는 걸로는 부족함.

성격 다른 대학 2~3개(공대·의대·인문사회 등)를 한 권역에 묶어서 같이 내려보내야 그 안에서 만들어지는 상호작용이랑 창의성 밀도가 차원이 달라짐. 그래야 새로운 지역 브랜드도 생기고, 방학 때 텅 비는 공동화 문제도 줄어듦.

산호초에 한 종만 있는 것보다 여러 종 섞여 있어야 생태계가 튼튼해지는 거랑 똑같은 원리임. 대학 지방이전 정책 짤 때도 "어떤 대학 하나 옮길까"가 아니라 "어떤 대학들을 묶어서 하나의 생태계로 만들까"로 접근해야 함.

ps. 이건 좀 은유적인 논리인 거 인정함. "종 다양성 → 창의성" 연결이 엄밀한 인과관계는 아니고 비유임. 근데 리서치 트라이앵글 통계는 실제 팩트니까 그건 참고하면 됨.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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