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많이 읽던 날이 있었습니다. 이명박, 박근혜, 윤석렬이 당선된 이후입니다. 아마 내가 평생 읽었던 책 중 최소 절반 넘게는 이 시기였을 것입니다. 뉴스, 커뮤니티 등 사회관계망 서비스까지 끊고 책 읽기에 몰두한 시기였습니다.
박근혜 당선 후 레미제라블이 개봉되었습니다. 선거 패배 후 대한민국을 원망하고 저주를 퍼붓고 있던 저는 이 영화에서 큰 위로 받았습니다. 영화의 여운이 너무 크게 남아 한번 읽고 책장 구석에 묵혀 두었던 레미제라블을 다시 꺼내 들었습니다. 그새 나이가 들었을까요. 읽을수록 한 인물에 새로운 관심이 생겼습니다. 자베르 경감이었습니다.
죄인의 유전자는 따로 있다. 갱생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하려 집요하게 장발장을 쫓았지만 그럴수록 혼란이 가중됩니다. 악인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실은 선한 존재일 수 있다고 여긴 순간이 옵니다.
‘성자 같은 범죄자라는 존재를 인정해야 하는 괴로움, 그리고 법을 어기고 범죄자를 놓아준 자책감, 그 어떤 상황에서도 신이 자신에게 보여준 이 이상한 광경을 자베르는 감당할 수 없었다.’
처음 읽었을 땐 고뇌하다 자살을 선택한 자베르를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자살로 이끈 빅토르 위고의 의도 역시 알 수 없었습니다. 나이 탓일까요. 두 번째 읽어보니, 변하는 세상에서 나 자신이 새로운 질서를 받아들일 수 없다면 신념을 바꿀 생각이 없다면 그럴 수도 있겠구나. 악인에 불과했던, 죽음으로 속죄한 줄 알았던 자베르의 마지막이 새롭게 다가 왔었습니다.
죤 스튜어트 밀은 천재였습니다. 세 살 때 그리스어를 배우고 쓰고 여덟살 때 라틴어 익히고 그리스어로 된 원전을 읽었습니다. 열여섯 살에 공리주의 학회를 만들어 토론하고 신문사에 기고하고 논문을 씁니다. 그랬던 밀이 스무 살이 되던 해, 한가지 생각이 문득 듭니다. ‘공리주의가 온 세상에 전파되어 공리주의 세상이 온다면 과연 나는 행복할 수 있을까.’ 행복할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르자 오랜 기간 방황합니다.
국부론의 아담스미스 못지않은 천재였고 자본론의 마르크스만큼 사회변혁에 관심 많았던 밀이 끝내 천착했던 건 사람이었습니다. 인간이 자유를 바탕으로 한단계 더 성숙한 지적, 도덕적 삶으로 나아가야 세상은 더 나아질 수있다 여겼습니다. 아담스미스나 맑스처럼 그 역시 더 나은 세상을 바랬지만 밀은 제도 보다는 사람에 더 무게를 두었다 저는 그리 이해했습니다. 그래서 쓴 책이 자유론이라 여깁니다.
”자신의 의견이 틀릴 수도 있음을 인정하고 반대 의견을 경청하며 자신의 생각을 교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야말로 지적으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다.“
”자신의 주장만을 알고 있는 사람은 사실 그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과 같다.“
더 나은 세상을 꿈꾸며 후대에 널리 읽히길 바랬던 밀은 그렇게 저의 석두를 사정없이 후려쳤습니다. 얼굴이 벌게졌습니다. 때로는 억지로, 나이로 토론한답시고 후배들을 억박지르고 친구들에게 고함쳤던 저 자신이 떠올랐습니다. 차라리 그때 나의 무지를 인정하고 후배 의견을 경청했더라면, 친구에게 진심으로 대했었다면. 도대체 내가 알면 얼마나 안다고. 나부랭이에 불과한 그것도 지식이랍시고 거들먹거렸던 저를 돌아보았습니다.
커뮤니티엔 많은 글들이 쏟아집니다. 유튜버를 필두로 민주진보진영을 표방하는 여러 싸이트에선 지금 ‘전쟁’ 중에 있습니다. 이쪽에서 저쪽은, 저쪽에서 이쪽은 일베 버러지들보다 더 못한 넘들입니다. 생각이 굳으면 소신이 되고 신념이 됩니다. 어쩌면 우린 틀릴 수도 있는 나의 생각을 억지로 신념화시키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내 생각이 옳다는 걸 증명하려 내가 보고싶은 것만 찾고 있는 건 아닐까요. 대통령에 대한 글을 한번 써보려다 이 판에 무슨 의미 있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횡설수설했습니다. 날이 덥습니다. 시사게시판 오시는 모든 분들, 편한 오후되시십오. 저녁엔 시원하게 소맥 한잔으로 어쩌면 힘들었을 하루 잘 마무리 하시길 바래봅니다.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