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시민의 '필패론'을 다시 읽다

시사

유시민의 '필패론'을 다시 읽다

얼죽반 0 42,166 08.20 15:31

유시민 작가가 이재명 정부를 향해 “필연적인 실패의 길로 가고 있다”고 말했다. '반명 선언', '결별'이라는 해석이 곧바로 따라붙었다.

 

나는 다르게 읽었다.


유시민을 늘 옳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다. 다만 자신의 정치적 지위나 욕망에 흔들려 저 정도의 말을 던질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윤석열 정권의 어두운 시간을 통과하며 나는 그의 말에서 위로를 받았고, 현실을 견디는 지혜를 얻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한마디만으로 그 모든 시간을 뒤집을 생각이 없다.


그렇게 읽는 이유는 세 가지다.


첫째, 나는 그것을 의도적으로 낸 파열음으로 본다.

강한 결속은 정치의 힘이지만, 지나치면 내부 비판까지 적으로 돌리는 반향실이 된다. 유시민 정도 되는 사람이 자기 말이 반대편의 무기가 될 것을 몰랐을 리 없다. 그런데도 “필연적 실패”라는 가장 극단적인 표현을 골랐다. 한 번 편집 돼 잘린 말을 다른 자리에서 굳이 다시 꺼냈다는 것도 실언으로 보기 어렵게 만든다.

부드러운 충고로는 흔들리지 않을 확신에, 그는 일부러 균열을 냈다고 나는 본다.


둘째, 그 비장함의 밑바닥에는 노무현을 잃었던 시간이 있다.

탄핵 정국에서 국회 경위들에게 들려 끌려나가던 유시민, 참여정부의 부침과 고립을 함께 겪고 퇴임 후까지 곁을 지킨 유시민, 그리고 노무현의 죽음 앞에서 무너져 울던 유시민이 있었다.

그 끝을 한 번 본 사람에게 다시 찾아온 정치적 가능성 앞의 위험은 우리와 같은 크기로 보이지 않을 수 있다.

남들이 아직 괜찮다고 말할 때, 그는 이미 그 끝을 본 사람이다.


셋째, 내가 보기에 그는 지금 레드팀의 역할을 하고 있다.

모두가 같은 방향을 볼 때 반대편에 서서 가장 듣기 싫은 질문을 던지는 역할이다. 정말 잘 가고 있는가. 우리는 너무 확신하고 있지 않은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밀어내는 위험은 없는가.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박수만이 아니다. 비난받을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은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그다음이다.


어제까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그의 통찰에서 위로와 지혜를 얻던 사람들이,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에 불리해 보이는 말 한마디가 나오자 하루아침에 돌을 던진다. 반대편에서는 평소 인정하지도 않던 유시민의 권위를 빌려 “유시민조차 실패를 말한다”고 외친다.


한쪽은 그의 말을 이유로 그를 버리고, 다른 한쪽은 그의 말을 이용하기 위해 그를 불러낸다. 나는 유시민이 이것까지 예상하고 각오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빨리 내 판단을 뒤집을 수가 없다. 오랫동안 그의 말과 행동을 지켜보며 쌓아온 신뢰가, 이번 한마디를 개인적 욕망의 좌절이나 배신으로 읽게 만들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내가 보지 못한 위험을 보고 있을 것이다.

그 판단이 옳았는지는 시간이 가려줄 일이다. 그때까지 나는 그의 '필패론'을 실패하기를 바라는 사람의 선언이 아니라, 실패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절박한 말로 읽을 것이다.


오랫동안 그의 말에 기대고, 그의 지혜에서 위로를 얻어온 나는

실망은, 조금 뒤에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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