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당으로 보는 정치판의 의리와 배신

시사

탈당으로 보는 정치판의 의리와 배신

얼죽반 0 54,244 08.15 23:41

누군가를 “의리 있다”고 불러버리면 그다음부터는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그가 무슨 선택을 하든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로 정리되고, 누군가를 “배신자”라고 불러버려도 마찬가지다. 그 이름표 하나로 판단은 끝나고 우리는 편해진다.

 

이번 민주당 당대표 경선을 지켜보면서 눈에 띄는 게 그 지점이다.

 

정청래에게는 분명 의리를 말할 장면이 있다. 2016년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고도 당을 등지지 않았다. 무소속으로 나가거나 조용히 물러나는 대신 다른 공천 탈락자들과 ‘더컷유세단’을 꾸려 전국을 돌며 민주당 후보들을 도왔다. 자기 손해를 감수하고 움직인 선택이었다. 이번 경선에서 그는 그때의 자신과 김민석·송영길의 탈당 이력을 나란히 놓는다. 자신은 떠난 적이 없다고 강조하고, 김민석을 향해서는 “한 번 배신하면 또 배신할 수 있다”고 말한다.

 

김민석에게는 2002년이 있다. 민주당을 탈당해 정몽준의 국민통합21에 합류했다. 후보 단일화와 정권 창출을 이유로 들었지만, 노무현 후보가 대선을 치르던 그 시점에 경쟁 후보 쪽으로 넘어간 선택이었다. 당시 노무현과 민주당을 지지했던 사람들에게는 큰 배신으로 받아들여졌다. 김민석도 이번 경선을 앞두고 봉하마을을 찾아 그 선택을 “오판과 부족”이었다고 다시 인정했다.

 

송영길도 탈당한 적이 있다. 2023년 돈봉투 의혹이 터지자 당을 떠나고 상임고문직을 내려놓았다. 당대표 시절 의혹이 제기된 의원들에게 스스로 요구했던 원칙을 자신에게도 적용한 것이라고, 당에 누를 끼친 책임을 지겠다는 것이라고 그는 설명했다.

 

같은 ‘탈당’이라도 성격이 다르다. 김민석은 경쟁 후보의 세력으로 옮겨갔고, 송영길은 자기 문제를 당과 분리하겠다며 나갔다. ‘남았다’는 사실도 늘 같은 무게를 갖지는 않는다. 정청래는 2016년에도 남았고, 2021년 ‘봉이 김선달’ 발언의 파장이 2022년 대선까지 이어졌을 때도 남았다. 하지만 앞의 남음은 자기 손해를 감수한 선택이었고, 뒤의 남음은 자신이 만든 부담을 당이 떠안은 채 자리를 지킨 선택이었다.

 

중요한 건 떠났느냐 남았느냐가 아니다. 왜 그런 선택을 했느냐다.

 

그런데 우리는 왜 자꾸 그 ‘왜’를 건너뛰고 결과만으로 판단할까. 그게 더 쉽기 때문이다. 의리는 귀한 덕목이다. 세상이 손가락질을 해도 곁을 지키고, 어려움이 왔다고 먼저 살길을 찾아 떠나지 않는 것은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그래서 한번 의리 있다는 평가를 받으면 그 평가는 훈장처럼 오래 남는다.

 

문제는 그 훈장이 사람을 가리는 가림막이 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저 사람은 원래 의리 있는 사람이니까”라는 말로 이후의 모든 행동을 덮기 시작하면 과거의 의리가 현재를 보는 눈을 흐리기 시작한다.

 

이 지점에서 하나 더 구분해야 할 게 있다. 친구 사이의 의리와 정치인의 의리는 같지 않다는 것이다.

 

친구 사이에서는 세상이 모두 등을 돌려도 끝까지 믿고 곁을 지키는 것이 아름다운 의리가 될 수 있다. 설혹 그가 틀렸을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은 당원과 유권자에게 권한을 위임받아 공동의 목표를 이뤄야 하는 공적인 사람이다. 정치에서의 의리는 사람을 끝까지 지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함께 지키기로 한 가치와 대의를 끝까지 지키는 데 있어야 한다. 그 사람이 틀렸다면 틀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행동에는 가장 좋은 의미를 붙이고 상대의 행동에는 가장 아픈 이름을 붙이는 것도 정치의 언어다. 그러나 그 언어가 사실과 판단까지 뒤틀어서는 안 된다. 정치적 의리를 친구 사이의 의리처럼 받아들이기 시작하면 사람에 대한 믿음이 행동에 대한 판단을 덮어버린다.

 

이런 댓글을 봤다. 정청래를 비판하는 글에 달린 “정청래는 컷오프된 뒤에도 전국을 돌며 민주당 선거를 도왔다. 짧고 진실된 글이 이거임.”

 

2016년의 사실은 맞다. 하지만 그 한 장면이 지난 1년의 당대표 직무 판단까지 대신해줄 수는 없다. 그 판단이 이재명 정부에 힘이 됐는지 부담이 됐는지는 2016년의 의리와 별개로 다시 물어야 할 질문이다.

 

김민석 쪽도 마찬가지다. 2002년의 상처는 24년이 지났다는 이유만으로 지워지지 않는다. 과거의 잘못이 평생의 낙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그렇다고 무너진 신뢰가 시간만으로 저절로 돌아오는 것도 아니다.

 

반성은 말로 완성되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문장을 골라도 상처받은 사람에게는 핑계로 들릴 수 있다. 그 신뢰는 김민석이 이후의 행동으로 직접 다시 쌓아야 할 몫이다. 만약 그가 이번에 당대표가 된다면 그 숙제는 더 무거워진다. “선거 끝났으니 승복하라”거나 “그게 언제 적 일이냐”는 말로는 얻어지지 않는 신뢰이기 때문이다.

 

정청래가 당대표가 된다 해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2016년의 의리는 이미 충분히 평가받았다. 이제 그에게 필요한 건 그 의리를 다시 증명하는 일이 아니라, 과거의 신뢰에 기대지 않고 지난 1년 동안 보여준 당대표로서의 역할과 실력에 대한 의심을 불식시키는 일이다.

 

이쯤에서 정청래를 지지하는 사람에게도, 김민석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도 같은 걸 묻고 싶다. 쉬운 질문은 아니다. 내가 지지하는 사람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는 일은 불편하고, 어쩌면 그 자체가 배신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래도 묻는다.

 

당신이 지금 그 사람을 믿는 이유는 뭔가. 그의 최근 행동이 이재명 정부의 성공과 같은 방향을 보고 있어서인가, 아니면 예전에 좋게 봤던 그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옳을 거라고 미리 정해놓은 건 아닌가.

 

순서가 한번 뒤집히면 이렇게 된다. 그 정치인이 하는 일이 정부의 성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지지하는 게 아니라, 내가 지지하는 사람이 한 일이니까 무조건 정부의 성공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

 

이번 경선에서 세 후보가 공통으로 내세운 목표도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었다. 그렇다면 경선이 끝난 뒤에는 그 말이 더 무거워진다. 승자와 패자, 그리고 그 지지자들이 실제로 그 성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움직이느냐가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김민석이 대표가 된다면 정청래를 지지했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얻어 당을 다시 하나로 묶어야 한다. 과거의 불신을 잊으라고 요구하는 대신 행동으로 신뢰를 쌓아야 한다.

 

정청래가 대표가 된다면 과거의 의리에 기대지 않고 자신의 정치보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앞세운다는 것을 행동과 실력으로 보여줘야 한다. 지난 1년 동안 제기된 의문을 불식시키고 집권여당 대표로서 당과 정부를 조율하는 전략적 능력도 증명해야 한다.

 

패자가 된 사람 역시 선거 기간 내내 말했던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 진심이었다면 승패를 넘어 그 목표에 도움이 되는 쪽으로 자신의 다음 행동을 선택해야 한다.

 

지지자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지한 후보의 승패보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앞에 놓을 수 있어야 한다.

 

한 장면만 꺼내서 ‘의리의 사람’이나 ‘배신자’라고 낙인찍는 건 쉽다. 그때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그 이후에는 어떻게 살아왔는지까지 따라가 보는 일은 훨씬 번거롭다. 심지어 그 믿음이 흔들릴 때조차 계속 믿어주는 것 자체를 내가 지켜야 할 의리라고 여기기도 한다.

 

그 번거로움을 우리가 계속 생략한다면 정치인들도 굳이 달라질 이유가 없다. ‘배신자’라는 한마디로 우리가 판단을 끝내주면 그들은 계속 배신자를 만들어 상대를 공격하는 정치적 무기로 삼을 것이고, 오래전 의리 있는 행동 하나로 지금까지 신뢰를 지킬 수 있다면 그 훈장을 계속 꺼내 보여줄 것이다.

 

의리는 한번 얻으면 평생 유지되는 자격증이 아니다. 배신도 한번 저질렀다고 평생 벗어날 수 없는 형벌이 아니다. 의리는 이후의 행동으로 계속 지켜야 하고, 배신으로 무너진 신뢰는 이후의 행동으로 다시 쌓아야 한다.

 

그걸 지켜보는 우리 쪽에도 몫이 있다. 과거의 공로에 취해 지금을 놓치지 않을 책임, 과거의 잘못 하나로 사람의 남은 시간 전부를 재단하지 않을 책임이다.

 

이번 경선에서 모두가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말한 만큼, 이제 의리와 배신을 둘러싼 판단도 결국 그 목표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행동인가를 기준으로 돌아와야 한다.

 

결국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누가 더 의리 있나”가 아니라 “누가 지금,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는 우리가 함께 말해온 목표를 향해 가고 있나”다.

[출처 : 오유-시사]

Comments

Category
반응형 구글광고 등
State
  • 현재 접속자 731 명
  • 오늘 방문자 1,332 명
  • 어제 방문자 82,398 명
  • 최대 방문자 195,216 명
  • 전체 방문자 6,573,185 명
  • 전체 게시물 135,082 개
  • 전체 댓글수 0 개
  • 전체 회원수 94 명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