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당대표 토론회를 지켜보며 쉽게 지나치기 어려운 장면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토론이 끝난 뒤 곳곳에서 이 장면을 둘러싼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송영길 후보는 정청래 후보에게 이재명 정부의 국정과제가 몇 개이며, 그중 제1호 국정과제가 무엇인지 물었다. 정청래 후보는 곧바로 답하지 못했다. 질문과 직접 관계없는 김민석 후보에 대한 비판을 이어가면서 자료를 찾았고, 송 후보가 거듭 “제 질문에 답해 달라”고 요구한 뒤에야 자신은 ‘내란 청산’을 가장 중요한 국정과제로 생각했다고 답했다. 그러자 송 후보는 자신이 묻는 것은 정청래 후보 개인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과제가 아니라, 이재명 정부가 공식적으로 정한 제1호 국정과제라고 거듭 강조했다.
결국 정청래 후보는 그것을 답하지 못했다.
이 장면을 단순히 토론 중에 나온 말실수나 암기 문제 정도로 넘길 수 있을까.
국정과제는 정부가 하고 싶은 일들을 나열해 놓은 목록이 아니다. 새 정부가 임기 동안 국가를 어떤 방향으로 이끌 것인지 국민 앞에 제시한 국정운영의 청사진이다. 대통령의 비전은 국정과제를 통해 구체적인 정책과 예산, 행정과 입법의 목표로 전환된다. 그중에서도 제1호 국정과제라면 그 정부가 무엇을 가장 중요한 시대적 과제로 인식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최상위의 이정표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국정과제는 정부 혼자 수행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실이 국정의 방향과 우선순위를 제시하고 정부가 정책과 행정으로 실행한다면, 집권여당은 필요한 법과 예산을 국회에서 뒷받침하고 때로는 야당을 설득해 정치적 합의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 여당의 전략과 입법을 지휘하는 사람이 바로 당대표다.
그런 당대표가 정부의 제1호 국정과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결코 가볍지 않다.
물론 지난 1년 동안 정부와 여당 사이에 수많은 정책 협의와 입법 협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개별 정책을 협의했다는 것과 정부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무엇을 최우선의 목표로 삼고 있는지 그 비전을 공유했다는 것은 다른 문제다.
여러 사람이 하나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함께 움직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각자가 맡은 일을 하는 것만이 아니다. 우리가 어디를 향하고 있으며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이루어야 하는지를 함께 아는 것이다. 그것이 팀워크의 출발이다.
집권여당 대표가 정부의 제1호 국정과제를 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지난 1년 동안 정부와 여당 사이에 그러한 비전과 우선순위가 얼마나 깊이 공유되어 있었는지를 되묻게 한다.
한때 알고 있었지만 기억하지 못한 것이라 해도 문제의 본질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지난 1년 동안 정부의 최우선 국정과제가 당대표의 지속적인 관심과 점검의 대상이었다면, 정작 그것을 묻는 자리에서 답하지 못했다는 장면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더구나 정청래 후보는 지난 1년 동안 끊임없이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강조해 왔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는 더욱 무겁다.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 정말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책무였다면, 그 정부가 무엇을 최우선 국정과제로 삼고 있는지는 당연히 그의 관심과 정치 활동의 중심에 있어야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이 문제가 드러난 뒤 벌어지는 모습은 더욱 씁쓸하다.
정청래 후보를 지지하는 쪽에서는 질문의 본질을 따지기보다, 상대가 함정을 파 공격하기 위한 비열한 술수를 부렸다는 식으로 호도한다. 반대편에서는 다시 이를 빌미로 정청래 후보와 그 지지자들을 공격하고, 정치 커뮤니티에서는 사실의 무게를 따지는 토론보다 조롱과 비아냥, 인격적 공격이 난무한다.
그러는 사이 정작 가장 중요한 질문은 사라진다.
집권여당 대표가 자신이 성공시키겠다고 말해온 정부의 제1호 국정과제를 왜 답하지 못했는가.
송영길 후보가 어떤 의도로 질문했는지는 그다음 문제다. 질문자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것과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별개의 문제다. 함정 질문이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집권여당 대표가 정부의 제1호 국정과제를 제대로 알고 있었느냐는 검증의 필요성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여기서 나는 제1호 국정과제를 답하지 못했다는 사실만큼이나, 그 사실이 드러난 이후의 태도를 중요하게 본다.
정치인은 실수할 수 있다. 알았던 것을 순간적으로 떠올리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자신의 책임과 직결된 중요한 문제를 지적받았을 때 필요한 것은 상대를 공격하는 일이 아니라 먼저 사실을 인정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태도다.
“집권여당 대표로서 당연히 숙지했어야 할 사안인데 제대로 답하지 못했다.”
그 한마디면 될 일이었다.
오히려 그런 인정은 정치적 약함이 아니라 책임지는 리더의 강함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은 채 질문자의 의도를 문제 삼고 정치적 반격으로 대응한다면, 지지자들 역시 사실을 직시하기보다 자신이 지지하는 정치인을 방어하는 데 몰두하기 쉽다.
진영의 맹목은 지지자들만의 문제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리더가 자신의 잘못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는가 역시 그 정치문화를 만들어간다. 정치가 진영의 언어로 잘못을 덮고, 지지자가 그것을 다시 진영의 언어로 방어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정치인과 지지자는 서로를 끌어올리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낮은 기준을 정당화하게 된다. 그 악순환을 끊어야 할 첫 번째 책임은 결국 리더에게 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는 말을 생각하게 된다.
그 말이 진정 국정의 성공을 의미한다면 중요한 것은 누가 더 크게 그 구호를 외치느냐가 아니다. 정부의 국정 철학을 얼마나 정확하게 이해하고 있는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여당을 어떻게 움직였는지, 부족함이 드러났을 때 그것을 인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는지가 훨씬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면 시민은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토록 반복해 온 ‘이재명 정부의 성공’이라는 말은 정말 국정의 성공을 위한 것이었는가. 아니면 정치적 필요에 따라 소비되는 편리한 구호가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이것은 어느 후보를 지지하고 반대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앞으로 집권여당을 이끌 사람에게 우리가 무엇을 요구할 것인가의 문제다.
지난 1년 동안 당을 이끌었던 사람이 다시 2년의 시간을 맡겨 달라고 한다면, 시민과 당원에게는 지난 1년을 묻고 그의 준비와 책임의식을 검증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그리고 이번 토론에서 드러난 장면과 그 이후의 태도는 그 판단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정치는 구호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국정은 팬덤의 환호로 완성되지 않는다. 정부와 여당이 하나의 비전을 공유하고, 정책과 입법으로 그것을 실천하며, 잘못했을 때는 인정하고 바로잡을 수 있어야 한다.
그 기본적인 책임 앞에서도 성찰보다 방어가 먼저라면 나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과연 다시 2년 동안 그에게 집권여당의 지휘봉을 맡겨도 되는가.
그리고 그것이 정말 ‘이재명 정부의 성공’을 위한 선택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가.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