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빨갱이'로 몰기 위해 간첩 사건 둘을 대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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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빨갱이'로 몰기 위해 간첩 사건 둘을 대령했다

라이온맨킹 0 43,534 10.11 21:04

 

 

[재심: 바로잡은 역사] 진보당 조봉암 제거 위해 간첩 조작한 이승만 정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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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이었던 조봉암
ⓒ 위키미디어 공용

이승만에게는 김일성보다는 진보당 조봉암이 더 큰 위협이었다. 한국전쟁에서 나타났듯이 김일성과의 대결은 그의 권력을 위협하는 한편 크게 강화시켰다. 반면, 1952년 및 1956년 대선에서 나타난 것처럼 조봉암과의 대결은 그의 권력을 크게 위협했다. 1956년 대선에서 조봉암은 극렬한 부정선거 속에서도 30.01%나 득표했다.

조봉암은 이승만의 스트레스 지수도 높여 놓았다. 그는 1956년 대선에서 자기 당 부통령 후보인 박기출을 선거 엿새 전에 사퇴시킴으로써 자유당 이기붕(44.0%)이 민주당 장면(46.4%)에게 부통령 자리를 내주게 만들었다. 이 때문에 이승만은 민주당 부통령과 불편한 동거를 해야 했다.

그런 조봉암을 이승만은 그냥 두지 않았다. 조봉암을 김일성과 연결시키고 간첩죄 및 국가보안법 위반죄를 뒤집어씌웠다. 정상적인 정치적 대결로는 이길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조봉암은 '자체 발광'으로는 빨갱이가 될 수 없었다. 그런 사상의 소유자가 아니었다. 그래서 이승만 정권은 조봉암을 빨갱이와 엮는 방법을 구사했다. 이를 위해 활용한 것이 제4대 총선(1958.5.2.)을 앞둔 1957년 하반기에 불거진 '박정호 간첩사건'이다.

그해 11월 7일 자 <경향신문>에 따르면, 57세인 박정호는 만주에서 군관학교를 졸업하고 항일단체 지하요원으로 활동하다가 일본 경찰에 검거됐던 항일투사다. 그는 해방 뒤에는 북조선노동당 경리부장 등을 지내다가 한국전쟁 직전에 남하해 무역업을 했다. 진보당을 포함한 혁신세력을 포섭해 평화통일운동을 촉진시키는 것이 그의 임무였다고 이승만 정권은 발표했다. 평화통일운동이 역모죄로 간주되던 이승만 집권기의 해괴한 분위기를 반영하는 장면이다.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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