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터의 역사적 의미 요약

시사

청와대터의 역사적 의미 요약

오호유우 0 74,767 06.12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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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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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저

 

 

 

[고려사] 등에 의하면

 

왕건태조의 아버지가 젊었을 때 집을 새로 짓는데

 

지나가던 고승이 말하기를 

 

"이러이런 방식으로 집을 지으면 

아들이 태어날 것인데

그가 새로운 나라의 임금이 될 것이다" 라고 함.

 

후에 실제로 왕건태조 태어나서 고려를 건국하게 됨.

 

 

그 고승은 한국 풍수의 대가로 유명한 도선국사였는데

 

도선국사가 말하기를 

"백두산의 정기가 북한산으로 내려오고 

다시 북악산(=백악산)으로 와서 

그 앞에 제1궁궐을 만들면 우리나라가 세계제1국이 될 것이다"

 

그 자리가 바로 청와대터.

(청와대 뒷산이 북악산(=백악산))

 

 

그래서 사실 고려는 초기부터 수도를 지금의 서울로 옮겨야 한다는 의견 많았고

청와대 터에 고려 남경 궁궐 건물 세워짐.

 

고려 말기에는 일시적으로나마 그 궁궐로 임금이 옮겨서 수도 이전이 실행되기도 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금방 다시 개경으로 돌아감.

 

조선이 건국하고 경복궁을 청와대 앞에 세운 것이 괜히 그런 것이 아니며 

 

그런데

 

'북악산앞(청와대터)에 제1궁궐을 지으면 한국이 세계제1국이 될 것이다'는 말을 

중국에서도 알게되었기 때문에 

 

중국의 공격을 우려하여 

 

청와대터에 남아있던 고려 궁궐 모두 없애버림.

 

그러나

 

그 고려 궁궐의 제일 중요한 2 자리를 기점으로 

경복궁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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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청와대터의 제일 중요한 두 곳이 [본관]과 [관저] 자리이고 

 

 고려 궁궐 중심 건물 역시 이 두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데 

 

경복궁의 중심 축선은 청와대 관저 자리에서 시작되고 

 

청와대 본관 자리와 경복궁의 중심 건물 근정전 사이에는 

'특별한 길'이 조성되어 있음.

 

이렇게 경복궁 처음 지을 때부터 

고려 궁궐 자리와 상통하는 형식으로 만들어짐.

 

 

고려 말기에 잠시 창와대터에 있던 궁궐을 제1궁의 사용하기는 했지만

그건 일시적인 것이었고 

 

본격적으로 청와대터가 우리나라 국정의 중심이 된 것은 

해방 이후.

 

그런데

 

그로부터 지금까지 한국은 세계에서 제일 빠른 발전을 하고 있음.

 

이는 물론 수많은 한국인들의 헌신(피와 눈물과 땀)으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이미 고려시대부터 중요시되어 온 청와대터의 의미 간과할 수 없다 봄.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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