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 청소년까지는 경계를 지워줄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청년까지는 경계지워줘서는 안된다고 생각함.
그냥 금쪽이처럼 받을 걸 당연하게 여기는 어린애가 됩니다. 한 사회에서 사회화되지 않은 인간으로 남게 되는 거죠.
어느 사회에서건 나이가 들어차면 성년으로의 인정을 받고 사회 구성원으로 제 역할을 하기를 기대받습니다. 그런 자각을 하지 못하는 채로 살아가게 됨.
병원에서 지켜보면 부모에게 허락받고 치료받는 소위 청년들이 많습니다. 자기 결정권이 있는 나이인데, 그걸 부모에게 물어봐야 함.
행여나 자기가 결정하면 꼭 뒤탈납니다. 왜 부모 허락 안받고 치료하느냐는 항의가 들어오죠. 아니...나이가 몇인데? 성형이나 암 치료비도 아니고.
집에서 설걷이는 자기가 할까? 자기 밥먹고 자기가 치우기나 할까? 학비까지는 어려울지 몰라도 아르바이트라도 해서 자기가 보태려고할까? 하다못해 받는 게 당연한 게 아니라 미안한 마음이라도.
그 시절에는 집을 가지고 좋은 차를 타고 좋은 학벌에 이미 가진 자를 부러워하고 동경하게 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거기에 오르기 위해 자기가 노오력을 하는 만큼 세상이 그러한 규칙을 가져야하는 거라고 생각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보수적이 된다고 합니다. (그건 보수가 아니라 그냥 힘을 원하는 상태라고 생각함)
개인의 세계관과 행동이 고립된 한 인간의 머리속에서 홀로 순환하는 구조인 거죠.
아마도 특정 사이트의 효과는 그러한 곳에서 에코챔버가 되는 구조인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오랜 시간을 들여서 나타나는 문제, 통찰 같은 게 부족한 관점을 가지게 되는 게 아닐까?
잘 모를 때면 책을 찾아보면 비슷한 고민을 하던 옛날 사람들이 있거든요. 인류 역사를 통틀어 반복하여 발생하는 문제들입니다.
그런 문제가 통시적인 통찰없이 에코챔버가 되는 사이트에서는 무한 순환되는 게 아닐까.
한때 벌어졌던는 공정 논란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쟤들은 진짜 순간을 살아가나 왜 사회 문제를 보는 관점이 순간의 미분값으로 보는 거지?'하는 생각이 들었음.
제가 그 시절에는 윗세대들의 사회적인 관점 속에서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소위 학연지연 같은 연고주의로 의사결정을 하는 시대였었음. 또 종교인 같으면 특정 종교가 되겠죠. 기독교도 한 축이었습니다.
가령, 윤석열이 검찰 조직과 고등학교 동문을 통해 내란을 획책했다는 점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명박 같으면 종교가 되겠죠.
작은 닫힌 집단을 만들고 부조리를 만들어서 내부에서 갈라먹는 구조인 거죠. 소위, 소설 광장에서 말하는 '밀실'인 겁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각없이 살아가는 인간들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드러나는 것이 두려웠습니다.
지금 시대는 다른 사회적 집단과 연대가 이루어 지는 거 같고 아마 개인은 다른 고민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거 같음. 솔직히 저는 잘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