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기 홍길동; 아직도 입 막힌 대한민국 선생님들 ]
2025년, 세상은 AI로 돌아가는데,
아직 대한민국은 교사는 SNS에 ‘좋아요’를 못 누른다.
정치 중립 때문이란다. 블랙코미디다.
총 든 군인은 그렇다 치자.
서류를 든 공무원도 애써 이해해 주자.
그런데 고작 분필 든 교사는
왜 정치적 유령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는 그들을 ‘선생+님’이라 부른다.
단순 지식 상인이 아닌,
삶의 길을 가르치는 스승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가는 그 스승의 입에 재갈을 물린 지 62년째다.
- “살아있는 화석, 갈라파고스 대한민국”
잘 산다는 나라의 모임 OECD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교사를 완벽한 정치적 식물인간으로 만든
유일한 나라.
국제적 희귀종이라는 뜻이다.
국제노동기구(ILO)와 유엔(UN)이
지겹도록 개선을 권고해도 한국은 꿈쩍하지 않는다.
독일 교사는 퇴근 후 정당 활동을 하고,
미국 교사는 주말에 피켓을 드는데,
한국 교사는 헌법을 유린한 대통령의 게시물에
‘화나요.’ 한번 잘못 눌렀다가 밥줄이 끊긴다.
이게 정상인가?
이 기괴한 족쇄는 1963년,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에 채워졌다.
원래 공무원을 정치 외압에서 ‘보호’하려던 조항을 비틀어,
그들의 입을 막는 ‘통제’의 도구로 악용한 것이다.
그 유신시대의 유물이 21세기까지 살아남아
교사들의 영혼을 감시하고 있다.
교실 안에서의 정치 선동은,
이미 ‘교육기본법’이 엄격히 금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 “침묵을 가르치는 교실, 괴물을 키우는 나라”
우리는 교사에게 민주주의를 가르치라 명한다.
하지만 민주시민으로 살 권리는 박탈한다.
참여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참여의 길은 봉쇄하고,
역사 속 불의를 가르치면서,
현실의 불의에는 눈감으라 강요한다.
완벽한 모순이다.
이런 ‘침묵의 교실’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배울까?
정의와 불의, 옳고 그름의 경계가 흐릿한 세상에서
입을 다무는 생존법만을 배울 것이다.
논쟁적 사안 앞에서 자기 생각을 지우고,
‘정치적 중립’이라는 허울 좋은 가면 뒤로 숨는
비겁함을 내면화할 것이다.
비판적 사고가 거세된 교실에서
어떻게 불의에 분노하고 부조리에 저항하는 시민이
자라날 수 있겠는가?
괴물을 만드는 시스템이다.
질문하지 않는 국민, 복종하는 대중은
바로 이런 교실에서 길러진다.
- “비겁하고 낡아빠진, 그들의 논리”
반대하는 자들의 논리는 셋이다.
하나같이 낡고 비겁하다.
첫째, ‘정치적 중립’을 지키라는 ‘주문’이다.
1963년 독재정권이 만든 60년 묵은 유물이다.
정치권력의 칼날로부터 교육을 지키려던 갑옷이,
어느새 교사의 온몸을 옥죄는 족쇄가 됐다.
이 해묵은 논리를 기반으로 반대하는 사람들을 향해,
성기선 경기교육미래포럼 대표는
“민주주의를 거꾸로 돌리는 퇴행”이라 일갈한다.
그는 단언한다.
“정치적 중립은 교사의 침묵으로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관점과 참여 속에서 발전한다.”라고.
중립은 거세가 아니라 균형이다.
세상의 소음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소음 속에서 길을 찾는 법을 가르치는 지혜다.
둘째, ‘학습권 침해’라는 공갈이다.
교사가 선거에 나가면 학교가 무너지는가?
그 빈자리는 휴직과 대체 교사라는 제도로 메우면 된다.
다른 공무원은 되고 교사만 안 된다는 억지 논리는,
그냥 차별일 뿐이다.
셋째, 교사를 잠재적 선동꾼으로 보는 모욕적 시선이다.
그들은 교사를,
아이들을 자신의 사상으로 물들이려는 위험인물로 취급한다.
교육 선진국 독일의 사례는
이런 시선이 얼마나 미개한지 보여준다.
독일은 ‘보이텔스바흐 협약’이라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교사의 전문성을 믿고 토론의 규칙을 만들었다.
그 원칙은 간명하다.
1) 학생에게 특정 견해를 강요하지 말라.
2) 논쟁적인 것은 논쟁적으로 다뤄라.
3) 학생 스스로 판단하게 하라.
우리는 어떤가?
그냥 입을 막는다. 누가 더 야만적인가?
- “그래서, 무엇을 바꾸자는 것인가?”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7법’이 통과 돼야 한다.
별도의 법을 만드는 게 아니다.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 등
7개 법률에 얽힌 족쇄를 끊어내는 대수술이다.
형식은 복잡하지만, 내용은 지극히 상식적이다.
첫째, 퇴근 후엔 시민으로!
근무시간과 학교 밖에서는 정당에 가입하고,
내 돈으로 떳떳하게 정치인을 후원할 자유를 보장한다.
둘째, 출마는 사직 아닌 휴직으로!
교사가 교육감 선거 등에 출마하기 위해 밥줄을 끊어야 했던
비상식을 끝내고,
다른 공무원처럼 휴직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한다.
셋째, 교실의 중립성은 그대로!
이 모든 것은 교실 안에서의 정치적 중립 의무는 지금처럼,
아니 오히려 더 엄격히 지킨다는 대전제 아래 추진된다.
이 법안은 2025년 현재 국회 교육위원회에 올라와 있다.
더불어민주당과 성기선 교수 등 지지 교육자들은
법안 통과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반대 세력은 여전히
‘교실의 정치화’라는 낡은 레코드를 틀고 있다.
10월 국정감사가 끝나면 본격적인 심사가 시작된다.
62년 묵은 야만을 끝낼 것인가,
미래 세대의 발목을 계속 잡을 것인가?
모두 힘을 보태야 한다.
- “스승의 귀환, 역사의 증언”
1980년 5월, 광주.
계엄군의 총칼이 도시를 겨눌 때, 교실의 불은 꺼지지 않았다.
어떤 선생님들은 교과서 너머의 진실을,
독재의 폭압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가르쳤다.
그들의 말을 들은 아이들은 거리로 나섰다.
학생들은 스승에게서 배운 정의를 지키기 위해 금남로를 가득 메웠다.
그리고 이 불씨는 대한민국에 민주주의를 가져왔다.
2024년 12월 3일,
헌법을 짓밟는 내란 시도가 벌어졌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막 끝낸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은 채 촛불을 들고 광화문으로 달려 나왔다.
그들을 가르쳤던 4,400여 명의 교사들은
징계의 칼날을 각오하고 시국선언에 이름을 올렸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스승이 깨어있는 시민을 만들고,
그 시민이 역사를 바꾼다는 것을 온몸으로 증명한 것이다.
오늘 우리는 그 스승들을 다시 가질 권리가 있다!
과도한 경쟁에 내몰려 학교가 학원 가는 정거장으로 전락한 지금,
교사의 입을 막는 것은 공교육의 숨통을 끊는 마지막 일격이다.
‘교원 정치기본권 보장 7법’의 통과는
단순히 교사의 권리를 되찾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무너진 교실을 살리고,
우리 아이들이 불의한 권력 앞에서
당당히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시민으로 자라게 할 마지막 기회다.
홍길동을 홍길동이라 부르는 나라.
그 당연한 세상을, 이제는 열어야 한다.
난 절라 기대한다.
내 친구 ‘최 선생’이, 내 글에 ‘좋아요’를 누를 그날을…
“잘있지, 최선생?”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