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심리학에는 '검은양 효과(Black Sheep Effect)'라는 것이 있다.
사람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규범을 어겼다고 생각하는 내부 구성원을, 때로는 외부 사람보다 더 가혹하게 평가한다.
국민의힘 사람이 민주당을 공격하면 '원래 저쪽이니까'라고 넘길 수 있다.
그런데 같은 민주당 사람이 내가 옳다고 믿는 선택과 다른 선택을 하면 감정은 훨씬 복잡해진다.
"어떻게 우리 편이 저럴 수 있지."
바로 여기서 의견의 차이가 적대감으로 바뀌기 시작한다.
내가 지지한 후보가 더 옳다고 생각하는 것까지는 자연스럽다.
그런데 그 확신이 강해지면 다른 선택을 한 사람은 단순히 판단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내가 아끼는 민주당을 훼손하는 사람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러면 말도 달라진다.
배신자가 나오고,
청소해야 할 사람이 생기고,
급기야 박멸해야 할 대상이 된다.
민주당을 지키겠다는 마음에서 시작했는데, 어느새 민주당 사람을 밀어내고 있는 이상한 풍경이다.
집단 갈등을 연구한 사회심리학에는 흥미로운 이야기가 하나 더 있다.
심리학자 무자퍼 셰리프는 여름캠프에 참가한 소년들을 두 집단으로 나누었다.
각자 자기 집단에 이름을 붙이고 경쟁하게 하자 아이들은 예상보다 빠르게 자기편에 강한 소속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쟁이 계속되면서 상대 집단을 헐뜯고 적대하는 모습도 나타났다.
흥미로운 것은, 그 적대감의 크기가 갈등의 이유와 비례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텐트 자리 하나, 게임 점수 하나로도 아이들은 서로를 미워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무엇을 두고 싸웠는지보다, 경쟁 구도 안에 들어섰다는 사실 자체가 적대감을 만들어낸 것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이들을 그냥 한자리에 모아놓는다고 해서 관계가 좋아지지는 않았다.
같이 밥을 먹게 하고, 함께 시간을 보내게 해도 이미 생긴 감정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변화가 나타난 것은 다른 상황이었다.
두 집단 모두에게 중요하지만 어느 한쪽만의 힘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주어졌다.
함께 물 공급 문제를 해결하고,
함께 힘을 모아 차량을 움직였다.
누가 옳았는지를 가리지 않았다.
서로 좋아하라고 가르치지도 않았다.
그저 둘이 함께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겼다.
그리고 공동의 과제를 반복해서 해결하는 동안 두 집단 사이의 적대감은 조금씩 약해졌다.
셰리프는 이런 것을 상위목표(superordinate goal)라고 불렀다.
서로 다른 집단 위에 놓여 있는,
혼자서는 이루기 어렵고 함께해야 도달할 수 있는 더 큰 목표.
생각해보면 우리에게도 그런 것은 처음부터 있었다.
우리는 김민석을 위해 민주당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정청래를 위해 민주당에 있었던 것도 아니다.
누가 민주당을 더 잘 이끌 것인가를 놓고 서로 다른 답을 냈을 뿐이다.
한 사람은 이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고,
다른 사람은 저쪽이 더 낫다고 생각했다.
그 판단이 틀렸다고 서로 인정할 필요도 없다.
지금도 내가 선택한 사람이 더 나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다만 한 가지는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서로 다른 답을 냈던 질문은 무엇이었는가.
그 질문을 끝까지 따라가면 결국 비슷한 곳에 닿는다.
민주당이 더 나은 정당이 되었으면 했고,
이재명 정부가 성공하기를 바랐고,
우리가 중요하다고 믿는 가치가 현실에서 조금이라도 더 이루어지기를 바랐다.
그래서 사람을 골랐다.
사람을 고르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편에 섰지만,
애초에 바라보던 곳까지 달랐던 것은 아니다.
경선은 하나의 답을 골랐다.
하지만 우리가 함께 이루려 했던 것은
그 답 하나보다 훨씬 큰 것이었다.
물 공급 문제 앞에서 두 집단이 그랬듯,
지금 우리 앞에도 혼자서는 풀 수 없는 문제들이 쌓여 있다.
이제 다시 눈을 들어 바라봐야 할 것도
서로가 아니라 그곳이 아닐까.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