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다르크

시사

올다르크

hsc9911 0 46,002 07.22 21:21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출입문을 막아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영장 심사를 받았던 30대 여성, 이른바 보수 커뮤니티에서 ‘올다르크’라 불리던 인물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법원은 증거인멸과 도주 우려가 없다고 판단했지만, 정작 사회에  충격을 던진 것은 사건의 전말이 아닌 석방 직후 그녀가 내뱉은 한마디였다.

“나조차도 이렇게 불편한데, 나보다 더 귀하신 김건희 여사님은 얼마나 불편하셨을까.”

성조기를 두르고 법치를 흔들던 인물이 구치소를 나서며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자기 자신의 존엄도, 헌법적 가치도 아니었다. 권력의 중심에 선 인물을 향한 지극한 연민과 ‘상전’을 향한 걱정이었다.

무엇이 한 개인으로 하여금 스스로의 존엄성마저 낮추며 특정 권력자를 ‘더 귀한 존재’로 칭송하게 만드는가. ‘모든 인간은 존엄하며 동등하다’는 민주주의의 기본 전제는 그 한마디 앞에서 무력하게 무너졌다. 이 기이한 현상 뒤에는 세 가지 구조적 원인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다.

1 완벽한 정보의 격리: 대상에 대한 수많은 사법적 의혹과 비판적 진실조차 접하지 못하는 ‘정보 차단’ 상태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2 극단적인 확증 편향: 객관적 사실과 정황을 접하더라도, 이를 특정 집단의 주장대로 ‘정적들의 모함’이자 ‘거짓 정치 공세’로 재해석해 받아들이는 신념 체계다.

3 집단적 세뇌와 서사의 고착: 한 인간의 상식을 철저히 마비시키고 맹목적인 충성심을 주입하는 극단적 에코 챔버(Echo Chamber)의 작동이다.

이 장면은 과거 박근혜 전 대통령의 옥중 시절, 담장 밖에서 그를 향해 "마마"라 부르며 오열하던 지지자들의 환영을 떠올리게 한다. 신분제가 해체된 지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극단적 진영 논리는 스스로 피치자의 위치로 내려앉는 '자발적 노예의식'을 끊임없이 변종으로 재생산해 내고 있다.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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