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우파시즘의 희생제

시사

극우파시즘의 희생제

iamtalker 0 18,647 07.06 05:59
밑의 글은 12년전에 일베분석하면서 썻던 글입니다. 갑자기 생각나서 재공유해봅니다. 12년간 한국은 파시즘 척결에서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답답하군요. 그러나 결국 극우를 소멸시킬수 있을거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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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파시즘의 약자혐오는 과거 종교집단에서 일어나는 인신공양과 같으며, 그 이유는 집단내 스트레스를 경감하기 위한것에 있다.따라서 약자혐오를 허용하며 사회 스트레스를 경감시켜 기득권을 존속시키는것보다, 기득권을 해체시켜서 스트레스의 근본원인을 제거해야 한다.


난 기독교를 믿지 않는다. 다만 내가 보기에 기독교의 교리는 상당히 독특한데가 있다. 바로 대속이다. 과거 유대교는 희생양을 만들어 죽였다. 그리고 이제 민중에게는 죄가 사해졌다고 말했다. 이것을 매년마다 반복한다. 이제 예수가 왔다. 예수도 죽었다. 그러나 예수는 부활했다. 그리고 예수는 계속 죽고 다시 부활한다. 물질적인 대속양이 정신적인 그리스도로 전이된 셈이다. 이제 민중은 계속해서 양을 잡을 필요가 없다. 교회에 가서 회개하고 예수와 같이 죄를 죽이고, 예수와 다시 함께 살아난다. 이게 계속 무한 반복이다.

집단내부갈등과 내부갈등의 진정이라는 의미에서 볼때… 유대교의 어린양 대속이나 기독교의 그리스도 대속은 많은 문화권에서 나타난 희생제와 비슷하다. 즉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인신공양을 하고, 우리를 용서해 달라고 하늘의 신에게 빌고, 은총을 간구하는 행위…

왜 이런 제사를 지내는가? 내부갈등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이 집단을 이룸으로 인해 나타나는 필연적인 권력에의 욕망, 권력유지에의 집착,기득권의 형성, 그리고 빈부격차로 인한 사회갈등.

인간 역사에서 강자는 항상 다른 인간을 핍박하고, 멸시하고, 이용해왔으며 지금까지도 그러고 있다. 또한 그것을 능력의 차이라거나, 혈통의 차이라거나, 혹은 인종의 차이라고 하는 식으로 정당화시켜왔고 교육시켰다. 그러나 .. 갈등은 소멸되지 않는다. 어떤 식으로든 갈등에 대한 해소는 이루어져야 한다. 하지만 만약 갈등의 원인인 빈부격차, 권력격차,권력에 대한 남용을 제거하면 기득권은 소멸되는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인류역사에서 기득권은 제사를 고안해내었다. 유대의 어린양속죄의식, 마야의 태양신에게 대한 인신공양.. 그리고 현재 기독교에서의 예수를 매주마다 죽이는 행위..이건 의미없는 행위가 아니다. 이건 갈등을 일시적으로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 교회에서… 사람들은 예배중에 신과 함께 죽고, 신과 함께 다시 살아난다. 그 와중에 갈등은 해소된다. 하지만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 빈부격차와 기득권의 타락은 여전하기 때문에 이것을 계속해서 반복해주어야 한다. 정치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파시스트들이 사회적 약자를 내부갈등의원인으로 지목하는건, 현대적인 인신공양이다. 가장 약한 자를 제물로 몰아 죽임으로서 ,내부갈등을 봉합하는것이다. 왜 약한자냐고?? 그게 제일 만만하니까.

파시스트들의 약자혐오는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인신공양의 다른 표현이다. 그들은 스트레스를 발산할 누군가가 필요하고, 사회적 약자는 그 대상이 된다. 나치의 유대인 혐오,일본의 재일혐오,일베의 전라도 혐오는 마야의 인신공양과 다를바가 없다.내부의 적을 일소한 파시즘은 스트레스는 발산했지만 내면적 갈등원인, 기득권은 여전히 남아 있는 상태이다. 그래서 계속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외부의 적을 찾게 된다. 그게 궁극적으로 파시즘 국가가 전쟁을 하는 이유이다.

만약 내부갈등에 대한 반발이 그 근본원인 즉 빈부격차를 만들어내는 기득권에게 향한다면 그건 혁명이 된다. 사회적약자와 외부의 적을 향한다면 그건 파시즘이 된다. 여기에서 인류진보와 퇴보가 엇갈린다. 사람들은 진보의 반대가 보수라고 한다. 그렇지 않다. 진보의 반대는 퇴보이다. 보수는 그저 고정되고 싶어하는,안정적이고 싶어하는 욕구이다. 진보하지 않으면 인간은 퇴보한다.파시즘을 이념이라고 말하는건 틀렸다. 파시즘은 현상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제사와 비슷하다. 희생양을 만들어 내부갈등을 진정시키는것, 그러나 내부갈등의 원인은 그대로 남아있다. 따라서 피의 제사는 계속된다.

이런 사회에서는 희생양이 계속해서 만들어져야 한다. 무고한자의 피가 흐르지 않으면 비정상적인 사회체계는 안정되지 못한다. 따라서 끝없이 어린양의 피는 제단에서 흘러내리게 된다. 하지만 예수는 단 한번 십자가에서 죽었을뿐이지, 매주마다 교회에서 죽었던 것은 아니다. 이제 희생양은 없어져야 한다. 무고한 자의 피가 흐르는것은 없어져야 한다.

파시즘이 행하는 사회적약자를 대상으로 한 야만적 제사는 중단되어야 한다. 약자의 피 대신 독재자와 파시스트의 피가 제단에 흘러야 한다. 그리고 제단은 그 시체와 함께 버려져야 한다. 그래야 이 광기가 끝난다.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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