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석을 무조건 "배신자"나 "철새"라고 규정하는 것은 부당할 수 있다.
정치인의 선택에는 이념적 판단, 전략적 계산, 현실적 이해관계가 복합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2002년 탈당과 국민통합21 입당을 단순히 "자신의 가치와 이상에 충실했던 행위"로 미화하는 것도 균형 잡힌 해석이라고 보기 어렵다.
우선 김민석이 원래부터 "엘리트 보수주의자"였다는 주장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
그는 1980년대 학생운동의 상징적 인물이었고, 민주화운동 세대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물론 학생운동 경력이 있다고 해서 평생 진보적 가치에 묶여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김민석이 김대중을 따랐던 이유를 단순히 "김대중에게서 보수를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지나친 해석이다.
김대중은 시장경제를 수용했지만 동시에 복지 확대, 남북 화해, 지역주의 극복 등 당시 한국 정치에서 진보적 요소도 강하게 갖고 있었다.
김대중을 보수 정치인으로 규정하는 것 자체가 논쟁적인 주장이다.
또한 2002년 김민석의 선택을 "자신의 가치에 맞는 정당을 만들기 위한 결단"으로 평가하기에는 결과와 당시 상황이 잘 맞지 않는다.
당시 국민통합21은 명확한 이념 정당이라기보다 정몽준 개인의 높은 지지율을 기반으로 한 정치세력에 가까웠다.
김민석이 중도보수 재편이라는 장기적 비전을 가지고 있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오히려 많은 유권자와 당원들이 그 선택을 기회주의적으로 받아들인 이유는
대통령 선거를 불과 몇 달 앞둔 시점에 당을 떠났기 때문이다. 비판의 상당 부분은 이념 때문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과 의리의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정몽준과 김민석이 노무현보다 더 가까운 세계관을 공유했다는 주장도 확정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정몽준은 재벌가 출신이고 김민석은 명문대 출신 엘리트 정치인이었지만,
사회적 배경의 유사성이 곧 정치적 가치의 일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시절 추진된 개혁 정책들 가운데 상당수는 김민석이 과거 민주당에서 주장했던 방향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재명과 김민석의 관계에 대한 해석 역시 추측의 영역이 많다.
김민석이 정치적으로 유능하다는 평가는 가능하지만, 그것만으로 현재의 협력 관계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민주당 내에서 김민석은 오랫동안 전략통으로 평가받아 왔고, 이재명 역시 당내 다양한 계파와 세력을 포용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두 사람이 손을 잡은 이유를 단순히 "유능한 엘리트와 실용주의자의 결합"으로 보는 것은 정치 현실을 지나치게 개인 중심적으로 보는 시각이다.
정청래에 대한 평가도 문제다. "친명"이라고 평가할 수는 있지만 "권력이 시키면 무엇이든 할 사람"이라는 식의 묘사는 정치적 비난에 가깝지
분석이라고 보기 어렵다.
실제로 정청래는 과거 여러 당 지도부와도 공개적으로 갈등을 빚어왔고,
자신의 정치적 소신을 강하게 드러내는 정치인으로 평가받는다.
단순한 충성파로만 규정하는 것은 그의 정치적 행보를 과도하게 축소한 해석이다.
무엇보다 가장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은 "2개월 후 완전히 새로운 민주당이 생겨날 것이며 김대중·노무현·문재인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정당은 특정 정치인의 의지만으로 완전히 재창조되지 않는다.
민주당은 이미 수년 동안 수많은 계파 갈등과 지도부 교체를 겪어 왔지만
김대중의 민주주의, 노무현의 지역주의 극복, 문재인의 검찰개혁과 복지 확대라는 정치적 유산은 여전히 당내에 존재한다. 정당의 정체성은 단절보다는 축적을 통해 형성된다.
결국 김민석을 "배신자"로만 보는 것도 과도한 단순화지만, 반대로 그의 모든 선택을 일관된 신념과 가치의 결과로 해석하는 것 역시 또 다른 신화 만들기에 가깝다.
정치인은 이상과 신념뿐 아니라 권력, 기회, 생존, 계산 속에서 움직인다.
김민석 역시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2002년의 선택도, 현재의 위치도 "원래 보수주의자였기 때문"이라는 하나의 설명으로 환원하기보다는 당시의 정치적 이해관계와 전략적 판단을 함께 고려해 평가하는 것이 더 타당하다.
[출처 : 오유-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