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 비평의 빛과 그림자: '해부'의 환희가 '교조'의 비극으로

시사

김어준 비평의 빛과 그림자: '해부'의 환희가 '교조'의 비극으로

수크 0 9,448 03.22 19:38

김어준이라는 인물은 한때 한국 정치의 지평을 바꾼 탁월한 해부학자였다.

그는 구름 위에서 노닐던 추상적인 정치적 담론과

안개낀 도로같은 국가시스템을 시장통과 같은 현실의 바닥으로

끌어내려서 그 배를 갈라 보여줌으로써

대중에게 정치와 제도,

그 속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의 구체적인 인과관계를 학습시켰다.

 

 

아들 세대가 부모 세대에게

정치적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게 된

아마도 한반도 역사상 처음 나타난 현상으로

이러한 시대적 공로는 분명히 그의 몫이며,

정치를 희화화하면서도 현실화한 그의 감각은

대중의 정치 참여를 이끌어낸 강력한 동력이었다.

 

 

그러나 비평가로서의 영향력이

정권의 성공과 실패에 맞물려서 진행되다가

윤석열 정권이 들어서고 내란이 일어나면서

김어준이라는 스피커는

국회에서의 혼란과 마비의 상황을

밖에서 바라보고 투영하는 유리창의 역할을 하였고

그러한 과정속에서 정치 유튜브이자

본격적인 온라인 정치방송의 판을 깔게되었다

 

 

이재명 정부의 성립과 안정에 크게 기여한 바가 있고

민주세력의 지지와 염원이 모두 한방향일 때

그 중심을 잡아주고 방향을 예측하며

여론을 형성 주도하는 거대 스피커이자 거대 권력이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민주 스피커로서의 독주와 압도적 지위를 통해서

그는 자신이 그토로 공격하려 했던 독선과 교조주의의 경계에 빠져버렸고,

처음 대중들이 받아들여준 정치 해부학자로서의 김어준이 아닌

신탁을 내리는 무당처럼 자신의 의견에 대한 부정을 부정하고 있다

 

 

그의 상징과도 같은 '겸손은 힘들다'라는 컨셉은

그 대상이 이명박, 박근혜, 윤석열과 같은

거악의 권력일 때만 유효한 저항의 도구였다.

시민들은 그가 그들을 향해 보여준 뻣뻣한 자세에서 대리 만족을 느꼈고,

권위주의를 조롱하는 그의 태도에 기꺼이 박수를 보냈다.

 

 

그러나 이재명 정부를 향해서까지,

그리고 그 정부를 지지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에게까지

그 오만한 컨셉을 들이대는 것은 매우 부적절하고 당황스러운 모양새댜

 

 

시민들은 그의 캐릭터를 일시적으로 '수용'해준 것이지,

그의 오만함을 무비판적으로 '주입'당한 존재가 아님을

그는 알아야 한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자신의 컨셉을 교조주의처럼 밀고 나가는 태도는

시민의 눈에 그저 비합리적이고 몰상식한 지배욕으로 보일 뿐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점은 비평가로서 가져야 할

'지적·정신적 성실함'의 상실이다.

현재 그는 비즈니스 확대에 따른 물리적 분주함에 쫓기며,

어쩌면 의도적으로 자신을 바쁘게 만들어

주변의 정당한 비판을 축소하고 왜곡하고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바쁨을 핑계 삼아 자신의 실수와 과오를 마주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지적 게으름'**이자 **'태만'**이다.

그는 수많은 출연자를 초대해 그들의 입을 빌려 방송을 채우지만,

정작 본인 스스로에 대한 피드백은 완전히 멈춰버린 듯하다.

이는 마치 휴게소를 한 번도 들르지 않고

고속도로를 무한 질주하는 운전자의 **'정신적 가수면 상태'**와 같다.

깨어있는 듯하나 목적지를 잃었고, 달리고 있으나 성찰은 부재한다.

 

 

이러한 지적 태만은 필연적으로 오만함을 부른다.

윤석열 정부를 지탱했던 '윤어게인' 세력의

독단적인 비평을 지겹도록 들어온 시민들에게,

김어준이 보여주는 작금의 행태는 똑같은 종류의 불쾌감을 자극한다.

 

 

마치 자신이 직접 경기를 뛰는 '선수'인 양 행세하며

이재명 정부의 정책과 인사를 재단하려 들지만,

시민들이 보기에 그는 그저 제일 앞줄에 앉아

목소리를 높이는 '관중'일 뿐이다.

경기장의 열기에 취해 자신이 경기를 지배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진 관중의 훈수는

이제 개혁의 동력을 갉아먹는 소음으로 변질되었다.

 

 

특히 이재명이라는 정치적 자산을 다루는 방식에서

그의 기만적 이중성은 극에 달한다.

그는 이재명의 과거 억울함을 풀어준다는 명분을 앞세워

현재의 이재명을 자신들의 영향력 유지를 위한 방패로 소비한다.

 

이재명은 이제 그들에게 경쟁의 대상이 아닌 정당성 확보를 위한 마스코트가 되었기에, 

이재명만을 성역화한 채 그 외의 잠재적 주자나 당내 인사들을 

무차별적으로 난도질하며 지지자들을 혼란에 빠뜨린다.

이는 지지자들을 '이재명의 정책'이 아닌 '이재명이라는 개인'의 서사에만 매몰시키려는 

교묘한 가스라이팅이며, 정치를 미래가 아닌 과거의 복수극으로 치환하려는 퇴행적 시도다.

 

 

이재명 정부를 끊임없이 기존 기득권 질서의 연장선에 있는

'평범한 정부'로 몰아넣으려 획책하는 이유도 명확하다.

이재명을 특별하지 않은 기득권의 틀 안에 가두어야만

자신들이 '진정한 선명성'을 가진

유일한 비판자이자 감시자라는 지위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들의 비즈니스를 위해

정부의 전무후무한 개혁성을 의도적으로 훼손하는 비열한 행위다.

 

 

자신들의 영향력이 미치는 커뮤니티와 방송에서 벌어지는

배타적 혐오와 갈라치기 행태는

그들이 이미 사이비 집단화되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건강한 민주주의 공동체라면 마땅히 존재해야 할

내부의 비판을 '분열'이나 '배신'으로 규정하고

시스템적으로 축출하거나 진입 자체를 방해하는 행위는

그들이 비판하던 독재 권력의 문법과 소름 끼치도록 닮아 있다.

 

 

평가의 기준을 투명하게 드러내지 않고

자신들만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집단은

결코 공론장의 주인이 될 수 없다.

비평가로서의 한계를 스스로 노출한 채

권력의 맛에 취해버린 그들에게 이제 남은 것은

자신들이 만든 견고한 성벽 안에서의 고립뿐이다.

 

우리는 이제 김어준이라는 필터가 주는 자극적인 **'재미'**

정치적 실체가 주는 내면의 **'기쁨'**을 엄격히 구분해야 한다.

재미는 외부에서 주입되는 휘발성 강한 자극일 뿐이지만,

기쁨은 정책이 실현되고 삶이 변화하는 과정에서

지지자의 내면으로부터 솟아오르는 지속적인 동력이다.

 

 

김어준의 궁극적인 목적은 이재명 정부의 모든 성취에

자신의 이름을 새기고, 그 승리의 결과를 자신의 세력이 흡수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탐욕으로 인해 민주 진영은 개혁을 해도 의심받고,

승리를 해도 반쪽의 성취에 머무는 비극을 예상할수 밖에 없다

 

 

과거 기득권 보수 세력의 물리력이 정면에서

이재명의 발걸음을 가로막았다면,

이제는 몰락해가는 **'민주의 잔반 세력'**들이

뒤에서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를 구체적인 인과관계로 파악하게 만든 과거의 공로는 인정하되,

이제 그 칼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돌아보거나 안식하는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기쁨은 비평가의 입담이 아니라 우리의 연대와 정책의 실현 속에 있으며,

재미라는 이름의 비아냥이 정치를 집어삼키게 두기에는

현실정치가 너무나 엄중하다.

 

많은 여당 스피커들이 김어준과 그의 의견에 무조건 동조하는 집단에 대해

가칭과 멸칭과 반박과 우려를 표한다

비판하는 자들이 모두 김어준이 말한 작전세력이니 이익만 추구하는 사람으로

몰기에는 그 수와 세력과 방향이 너무나 다양하다

 

 

마지막으로 김어준패밀리에게 바란다

이제 당신들이 보고 있는 정의롭고 고귀한 닫힌 성벽의 바깥쪽에는

당신들이 보지 못하는 너무나 다양한 벽화들이 넘쳐난다는 것을

그 담을 넘어 진짜 세상이 어떤지를 모른척 한다고

그 그림들이 빗물에 지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다

 

 

 

 

 

 

[출처 : 오유-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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