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에서 사라진 홍길동과 일본 오키나와에 남겨진 수상한 기록. 정말 홍길동은 일본의 왕으로 추앙받았던 걸까?
율도국은 현실이 아닌, 《홍길동전》에서 바다 건너 대양의 한 섬으로 표현된 가상 국가이다. 수평선 너머의 외딴 신비의 섬으로, 홍길동의 이상이 뿌리 내릴 수 있는 세계다.
출처:위키백과
글: 이성환(한의사, 자유기고가)
<홍길동전>은 순한글체로 된 우리 고전소설로 알려져 있다.
철저한 계급사회, 야만의 신분제도로 정권을 유지했던 이조선 정권,
홍길동으로 대표되는 조선민중이 이 폭정에 반기를 들었다.
그러나 거대한 기득권 체제를 뛰어 넘지 못한다
남은 무리를 이끌고 홍길동은 이 땅을 떠나 신분차별이 없는 이상향,
율도국을 만든다. 그동안 전설, 소설속 창작된 이야기로 만 알려져 왔다.
그런데 이 율도국이 실재했다는 증거가 나왔다
▲일본 오키나와에 일본에 병합되기 전 율국 명칭들이 즐비하다. '율국栗國도', '율국공항', '율국촌', '율국항여객대합소' 등이다. 김성환 선생에 의하면 모두 홍길동의 율도국의 흔적이다. 자료: 이성환
지난 2월 설 연휴에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언제가 신문에서 오키나와 도서관장이 홍길동의 율도국이 ‘오키나와’라고 고증한 것을 본 적이 있다. 또 한국방송 ‘역사스페셜’에서 삼별초가 제주도에서 오키나와로 갔다고 고증한 것을 보았다. 그런데 정말 실제 그럴까 궁금해 하고 있었다.
돌아다녀도 긴가민가 하다가 기념품 가게에서 율국栗國 소금을 발견하고 놀랐다. 율도국이 홍길동이 떠나간 섬인데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율도국이 아니라 율국粟國이었다. 이것은 날조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은 우리 역사도 날조하여 한국을 일본에 합병하려 했다. 하물며 합병에 성공한 오키나와의 역사야 얼마나 날조하였을까? 둘레 60 K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에 국國자를 붙인 것이 이상하고 그곳은 조가 생산되지 않는다.

▲ 일본 오키나와 율국도의 무당들이다. 모두 흰옷을 입고 있다. 부여 문화와 관련되어 보인다. 사진: 이성환
스물다섯번 이상 일본 유적 답사여행을 다녔다. 일본에 남아 있는 백제 역사 지우고 있는 현장을 여러번 목격했다. 율국도粟國島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율국도는 일본이 역사지우기 과정에서 남은 흔적이다. 홍길동 율도국 흔적임이 분명하다.
율국의 일본식 고대 발음은 ‘류쿠’국이 된다. 우리말 ‘일’은 일본말로 ‘이츠’, ‘팔’은 ‘하츠’, ‘실失’은 ‘시츠’로 발음한다. 그래서 ‘율’은 ‘유츠’가 된다. 오키나와 사람들은 류구국琉球國을 ‘류추우국’으로 발음한다. 리발소나 이발소가 같으니 ‘유츠’나 ‘류추우’나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같은 소리 ‘류추우’를 한자로 ‘류구琉球’라 쓴 것이고 홍길동은 ‘류栗’이라 썼다고 볼 수 있다.
홍길동전에 보면 홍길동이 왕을 만난 후 살 곳을 찾아 중국 남경으로 솟구쳐 날아갔다고 한다. 이 때 본 여러 섬 들 중의 하나가 율국도일 것이다. 나중에 여기서 자리잡아 세력을 키워 본섬으로 들어가 왕이 된다.
▲ 홍길동이 유구국 군사와 맞서 싸운 후루스토 성이다. 사진: 이성환
오키나와 본섬과 대만 사이에는 야에야마(八重山) 제도가 줄을 서 있는데 그 중에 가장 큰 섬이 이시가키(石垣島) 섬이다. 이 섬은 일본에서 가장 맛있는 소고기 산지로 유명하다. 섬에 외래한 소 종자라고 볼 수 있다. ‘석원’은 돌담이란 뜻인데 여기에는 ‘후루스토’라는 성이 있다.
일본인들은 그 뜻을 모르나 한국말로 하면 쉽게 알 수 있다. ‘후루’는 한국말로 ‘헐러버리다’ 할 때, ‘헐은’이고 ‘스’는 바닷가와 같은 소유격 사이 ‘ㅅ’이고 ‘토’는 ‘터’다. ‘옛터’라는 뜻이다. 이런 외진 섬에 무슨 성이 있나 의아하게 여겼다.
▲ 이시가키섬의 탈춤. 춤사위나 축원하는 공수가 비슷하다. 오키나와의 춤은 역동적인 것으로 유명하다. 가라테가 오키나와에서 유래되었다. 홍길동 무술이다. 사진: 이성환
그런데 이 섬에는 오야케아카바치홍가와라 라는 의적이 이 성을 근거로 본 섬의 류구국 군대와 대적했다. 오야케아카바치홍가와라는 유구국 역사서에 한자 이두로 ‘어무적봉홍가왕御武赤蜂洪家王’라 기록하고 있다.
홍길동의 흔적이 아닌가 한다. 유구국은 임진왜란 이후 일본에 편입된다. 이후의 역사서에는 홍가왕이 유구국 군대에 패해 처형당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처형당할 시기에 유구국 2대 국왕이 즉위 반년만에 소년 왕으로 대체된다. 반란으로 집권한 부왕은 이름이 금환金丸이다. 이 동생 왕이 반년만에 대체되는데 고대사에서 이런 경우는 왕위찬탈로 본다.
▲ 홍길동전에 철봉鐵峯으로 나오는 中城(나카 구스쿠) 모형. 구스코에 있는 있는 마추픽추와 비슷하고 북한산성과 같은 기능이다. 사진: 이성환
이 소년 왕은 50년 동안 재위하며 유구 역사상 가장 찬란한 업적을 남긴다. 이 때부터 진정한 중앙집권 군주제가 실시된다. 이 왕의 생몰연대는 홍길동전의 홍길동의 생몰연대와 거의 일치한다. 비슷한 시기에 태어나 똑같이 72세까지 산다.
홍만종의 '해동이적'에 명에 갔던 우리 사신이 유구국왕의 성이 공共 아래에 수水를 쓴다고 왕에게 보고했다는 내용이 나온다고 한다. 홍洪을 이렇게 쓴 것으로 보인다.
홍길동이 ‘제도諸島’에서 본섬에 들어가 왕성을 치기 전에 철봉을 차지한다. 본섬 중앙에 중성中城이란 요새가 있다. 사진에서 보듯이 철옹성이다. 그래서 <홍길동전>에서는 철봉이라고 한 것 같다.
▲ 구스쿠는 마니산 천제단 역할도 있다. 사진: 이성환
희한한 것이 이런 산성을 오키나와 말로 ‘구스쿠’라 한다. 잉카제국 수도 구스코 근처에 있는 마추픽추와 너무 닮았다. 산성 역할과 종교의식을 행하는 천제단 기능을 한다. 마니산이나 태백산 천제단과 흡사하다.
구스쿠는 '굿의 카'란 뜻으로 가야 시조가 내려왔다는 경남 구지봉(굿봉)과 어원을 같이 한다. 카는 땅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 다음 말구조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아사카, 아프리카(앞前의 카), 알라스카(알의 카), 멕시코(맥의 곳)의 경우 모두 ‘카’이거나 변형된 말로 끝난다. 땅이란 뜻이다. 구스쿠의 제단을 ‘우타키’라 하는데 ‘웃터의 곳‘이란 뜻이다. 소도가 ‘솟은 터‘인 것과 같다
출처 : 코리아히스토리타임스
'물의 길'을 따라 세운 율도국(栗島國)
2022.12.25. 오후 2:59
by신윤식
일본 오키나와(沖繩) 현 최남단 하테루마(波照間) 섬에는 현 교육위원회가 1953년 세운 추모비가 있다. 15세기 말 오키나와의 류큐(琉球)왕국에서 활약했던 오야케 아카하치, 일명 ‘홍가와라(洪家王) 아카하치’를 기리는 비석이다.
이 아카하치가 바로 조선의 홍길동입니다. 홍길동은 하테마루섬에 도착하여 인근의 큰 섬인 이시가키(石垣島)섬을 무대로 율도국(栗島國)을 세웠습니다.
강철근 / 경희대 교수
류큐왕국은 고려시대 삼별초가 1273년에 제주도에서 몽골군에 패한 후 오키나와 열도로 항해하여 건국했다는 설도 있습니다만 이는 근거가 많이 부족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 역사상 실존 인물로 알려진 홍길동(洪吉同 1440~1510)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전라도 장성 출신의 홍길동이 강상죄(고위 관직을 사칭하여 관리를 능욕한 죄)로 충청도에서 서울로 압송되어 의금부에 갇혀 있다가 1500년(연산군 6년) 11월에 남해 삼천리 유배형을 받아서 간 곳이 바로 류큐왕국 부근의 섬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조선은 명제국과 밀접한 외교 관계를 맺고 있었고, 류큐국도 조선과 교류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 부근의 섬으로 유배가 가능했으리라 봅니다. 본래 조선시대 강상죄는 국경지대 유배형 이었는데 이때 홍길동도 강상죄를 범했으므로, 명과 조선, 일본과 류큐왕국의 중간 지점 정도의 한 섬으로 유배를 보낸 것으로 추정됩니다. 한반도와 류큐간에는 오래전부터 바닷길이 알려져있어 쉽사리 항해했으리라 생각합니다. 홍길동은 1500년 12월 5일에 하테루마(파조간,波照間)섬에 처음으로 발을 내딪게 됩니다. 그 섬은 류큐열도의 최남에 있는 작은 섬으로 오키나와 본섬에서 약450km나 떨어져 있는 섬으로 오히려 대만과 가깝습니다. 홍길동은 1502~1503년경 인근 큰 섬인 이시가키섬(석원도)의 오하마무라(대병촌) 후로수토 지역에 집단 거주지를 조성하고 죽부도(다케토미), 서표도, 여나국도 등 인근의 지배권을 장악했고, 1504년에는 미야코지마(궁 고도)의 추장인 나카소네의 혹독한 압제와 과중한 세금으로 고통에 시달리던 원주민을 규합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고 나카소네 집단을 섬의 동북부 밀림 지역으로 몰아내고 상비 옥산(上比屋山)에 조선 도래인들의 집단 주거를 위해 초가집 군락을 조성했다고 합니다. 이어서, 1505 ~ 1508년 경에는 구에지마(구미도, 久米島)에 상륙, 추장인 마다 후서를 몰아내고 일본, 류큐왕국, 명나라를 상대로 중계무역을 하면서 동중국해의 해상권을 장악, 섬의 요처에 적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유리한 조선 양식의 성(城)을 구축했다고 합니다. 그때 건설한 성(城) 중 우에구수쿠(上城-섬의 최정상에 위치, 현재 일본 ㅈㅏ위대 레이다 기지)는 홍길동의 장남이 구축했고, 나카 구수 쿵(中城)는 홍길동의 차남이 조성했다고 하며, 그 외에 구시가와 구수 쿵(具志川城)가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점차 류큐열도 일대의 작은 섬을 중심으로 해상 왕국(일명‘栗島國’)을 건설합니다. 홍길동은 류큐열도의 지배 세력인 류큐왕국의 주목을 받게 됩니다.
16세기초 홍길동이 물길따라 건너가 정착하고 그와 그의 후손들이 활동했던 류큐열도의 주요 섬들
1510년 경 홍길동이 사망하고, 홍길동의 후예들이 해상 무역 활동을 하면서 왕국을 다스려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홍길동의 후손들은 류큐국의 3대왕 상진(尙眞 1465 ~ 1526)왕에 의해서 대체적으로 다 평정되었습니다. 상진왕 시대는 류큐역사상 가장 번영했던 황금기 입니다. 홍길동의 후손들이 기승을 부리던 시대에도 본토 오키나와의 일부를 점령했다는 기록은 있으나, 그 후손들이 오키나와를 정복하고 지배한 것은 아닙니다. 단지 오키나와 본섬을 제외한 주변 바다의 작은 섬들을 배경으로 한 때 활동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오키나와의 율국도(栗國島)라는 섬은 홍길동 및 후손들이 활약했던 섬들중 하나로 율국도라는 지명은 율도국(栗島國)에서 유래된 것으로 주장하는 연구자들도 있습니다.
오키나와 본섬에서 북서 방향으로 약 60km떨어진 곳에 있는 율국도, 율도국(栗島國)의 흔적이 느껴지는 섬으로 제주도와는 740km거리에 있다. 율국도는 둘레 60 Km밖에 되지 않는 작은 섬인데 국(國)자를 붙였고, 이 섬에는 '조'가 생산되지 않는데도 조를 의미하는 율(栗)자가 들어있다. 율국의 일본식 고대 발음은 '류큐'라고 한다.
류큐왕국 국왕 어진도
<< 류큐왕국의 역사>>
류큐국의 언어와 문자
문자는 이전부터 빌려 쓰던 중국 문자 및 강요된 일본 글을 사용했지만, 입말인 언어만큼은 ‘류큐어’,즉 류큐 우치나’라고 하는 자기 나라 고유의 말을 써 왔습니다. ’류큐어’는 일본 말과 그 음운 구조가 전혀 다르기 때문에, 오키나와 사람들은 일본 말을 하지만, 일본 사람들은 ‘류큐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합니다.
오키나와에 남아 있는 조선 풍습들
오키나와의 야에야마 제도(이시가키섬 일대)를 여행하다 보면 낮은 음색의 독특한 민요를 끊임없이 듣게 됩니다. 그중 야에야마를 대표하는 민요는 ‘아사 도야 윤자’. 다케토미 지마(죽 부도)의 미녀가 오키나와에서 온 관리의 청혼을 거절한다는 내용으로 다양한 가사와 리듬으로 바뀌어 불리고 있습니다. 이 ‘아사 도야 윤자’는 식당에 가건, 물소 차를 타건 흘러나와 이틀만 지나면 친숙해집니다. 힘든 노동을 하면서 부르던 이 민요들은 현재 오키나와 전통문화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재평가 받고 있습니다.
이시가키섬의 대표적인 전통민요 공연단을 이끌고 있는 하나 시로 도시 아사(50) 씨는 “오키나와 방언을 보존하려는 움직임이 최근 활발해졌다"라며 “민요에는 수백 년 전의 말들이 고스란히 남아있다"라고 말했다. 오키나와 방언 중 특이한 점은 가족 호칭이 우리말과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할머니는 '아빠', 할아버지는 '아부제', 어머니는 '안마'라고 부릅니다. 오키나와에는 조선에서 전래됐을 것으로 짐작되는 문화들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오키나와 스모라고 불리는 씨름은 샅바를 잡은 채 일어서서 경기가 시작되는데 일본 스모와는 전혀 다르고, 한국식 씨름이라고 불러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이시가키섬의 한 80대 할아버지는 “살아계셨다면 130살 됐을 할머니는 조선식 주름치마를 입고 다니셨고, 윗사람을 존중하는 문화도 조선과 같다"라고 말했습니다.
당시 오키나와 일대에는 이미 안남미(安南米)라는 남방계의 쌀이 있었으나 질이 좋지 않았는데, 3남 2녀를 둔 홍길동의 부인 ‘고을로’가 조선에서 미질이 좋은 신품종의 볍씨(쌀)을 그곳에 가져가 재배하여 질 좋은 쌀을 먹게 되었기 때문에, 현재 오키나와 야에 야마(八重山) 지역에서는 ‘고을로’를 풍요의 여인으로 추앙하고 있다고 합니다.
< '류큐는 조선인의 후예이다' 라는 주장에 대하여 >
류큐왕국은 조선, 명, 일본 그리고 동남아 사이에서 중계무역으로 번성한 나라이기 때문에, 여러 나라와의 빈번한 교류가 있었고, 그에 따라 일본이나 중국 등의 풍속이 주로 많이 이양되어 있고, 고려와 조선의 문물도 많이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그들이 조선의 후손이라고 보는 설은 지나친 억측입니다.
출처 : 네이버프리미엄콘텐츠
[출처 : 오유-유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