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인데 적당히 야하고, 적당히 읽을 만한 글입니다

유머

소설인데 적당히 야하고, 적당히 읽을 만한 글입니다

92%당충전 0 63,661 03.23 13:50

그렇습니다. 

제 뇌내 우동사리들은 늘 망상을 품고 살아요;;

 

그냥 월요일 출근해서 일하기도 싫으실 텐데,

가볍게들 읽어보셔요

 

 

한 번도 신지 않은 아기 신발로 겨울을 건너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세상이라지만, 절대 불변하는 진리도 있기 마련이다. 예를 들면, 지금 내가 입고 있는 군복이 그렇다. 아무리 좋은 옷감으로 만들었어도, 값비싼 섬유유연제를 넣고 세탁을 했더라도, 군복은 군복이다. 민간인들 사이에 섞이기 힘든 이물질에 불과하다.

 

 

다들 공감하겠지만, 이물질이 여자를 꼬시는 건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이나 힘든 일이다.

 

 

다행히 내겐 좋은 삼촌이 있다.

얼룩무늬 전투복에 줄을 잡아 입고 다녔던 나의 삼촌과 매끈한 디지털 군복을 입은 나 사이에는 이십여 년이 넘는 세월이 존재하지만, 난 살면서 삼촌이 나보다 대단한 어른이라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삼촌은 누구보다 말이 잘 통하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다.

 

 

지금 톡으로 사진이랑 비번 받았지? 동그라미 친 사물함 보여? 거기서 오른쪽으로 두 칸, 아래로 두 칸, 다시 왼쪽으로 두 칸, 위로 두 칸. 그래, 거기에 옷 넣어뒀어.”

 

 

잠깐만! 동그라미가 아니고? 오른쪽으로 두 칸, 그리고 아래로? 아니, 잠시만, 두 칸, 두 칸, 에이씨, 뭐야? 그럼, 그냥 동그라미 친 게 맞네!”

 

 

역시, 넌 짬밥을 먹어도 여전하구나.”

 

 

삼촌은 매번 이런 식이다. 내 휴가 소식을 듣자마자 먼저 옷을 챙겨서 지하철 보관함에 넣어주겠다고 한 것도 삼촌이지만, 그걸 가지고 놀려먹고, 생색내고, 다시 또 토닥여주는 것도 삼촌이다. 아니나 다를까, 갈아입은 청바지 오른쪽 주머니에는 5만 원권 몇 장이 꽂혀 있었다.

 

 

까톡.

 

 

다 큰 사내자식이 현찰 몇 푼에 막 감동하고 그러지는 말고. 그 돈으로 혜수라고 했냐? 혜인? 아니, 혜지? 몰라, 하여튼 만나서 맛난 거 좀 사주고 그래.’

 

 

정말, 삼촌이 있어 참 든든하다.

덕분에 휴가 나오자마자 학교로 달려갈 수 있으니까.

 

 

그래,

학교에 분명 있을 테니까. 학교 동아리방 문을 열면, 그곳에 있겠지.

차가운 얼굴로 맥북을 두드리며 커피를 마시는,

나의 혜민이 누나가 있을 테니까.

 

 

맞다, 삼촌이 잘 알면서도 나열했던 혜수, 혜인, 혜지라는 이름의 주인공은 사실 혜민이 누나다. 대학에서 우연히 만난 나보다 두 살 많은 누나. 청바지에 흰 티셔츠 한 장 입은 것만으로도 관능적인 매력이 전해지는 위험한 여자. 작은 얼굴과 달리 공격적으로 솟은 가슴에 시선이 빼앗길 수밖에 없는 마력의 소유자.

 

 

그런 이미지에 홀려서 열심히 쫓아다녔다. 우린 전공도 다르고, 공통의 관심사랄 게 없었지만, 다행히 창작 동아리라는 공간이 있었다.

 

 

, 내 조카가 얼빠라니, 그것도 금사빠라니! 통탄할 노릇이군. 짜식아, 외모는 순간이야! 그런 것보다는 서로 공통분모가 있어야 오래간다고. 그게 아니면, 네가 금방 힘들어질 거야. 헌데, , 지금은 내가 뭐라고 한들 네 귓등에도 내려앉지 않겠지. 그럼, 보자, 혜수? 아니, 혜인? 혜지라고 했나? 하여튼, 학과는 달라도 수업이나 동아리가 같을 수는 있잖아. 공통분모가 없으면 만들어야지 뭐 어쩌겠어? 그 애가 교양수업 뭐 듣는지는 알아? 아님, 동아리는?”

 

 

그때도 삼촌은 나의 훌륭한 멘토였다. 난 곧장 학점 인정도 되지 않는 교양수업을 도강하기 시작했고, 창작 동아리에도 가입신청서를 냈다.

함께 할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문제가 되지 않았다.

 

 

혜민이 누나는 화려하고 관능적인 만큼 대단한 사람이었다. 창작 동아리 회장으로 권력자였고, 냉정한 이성주의자였다. 가슴에서부터 엉덩이까지 이어지는 부드러운 곡선을 보고 있자면, 딱 부러지게 말하는 모습이 전혀 다른 사람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나와 누나 사이에 서늘한 겨울이 내려앉은 것 같았다.

 

 

장르는 관계없어. 그런데 뭐든 써와야 해. 웹소설도 좋고, 에세이도 좋고, 시를 써도 좋아. 대신 반드시 써와야 해. 그리고 최종 목표가 공모전이나 플랫폼 상위 노출에 있어야 해. 우린 그러기 위해서 만나는 거야.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피드백도 주기 위해서.”

 

 

덕분에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세상에는 우리 삼촌 외에도 있다는 걸. 아니, 글로 밥을 빌어먹고 산다는 꿈에 미쳐 있는 사람들이 이토록 많다는 걸.

 

 

, 좋아요. 제가 찾던 곳이네요.”

 

 

, 어쨌든 그런 건 그때나 지금이나 문제가 되지 않았다. 누나의 그런 서늘함조차 내겐 동경의 대상일 뿐. 닿고 싶다고 쉽게 닿을 수 있었다면, 이토록 오랜 시간 홀로 마음에 품고 있지도 못했을 노릇이다.

덕분에 난 의도치 않게 한동안 글을 써야 했고, 매번 동아리 회원들에게 깨져야 했다. 한 집안의 식구라지만, 삼촌과는 달리 내겐 재능이 없었다. 그럴 때마다 난 누나의 잘록한 허리와 긴 생머리를 떠올리며 시간을 흘려보내곤 했다.

 

 

어서 와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요!”

 

 

동아리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예지가 반겨주었다.

예지는 한 해 밑의 후배다. 작고 동그란 귀여운 얼굴, 그런 얼굴을 더 동그랗게 만들어주는 동그란 안경. 살면서 그렇게 예지만큼 작고 동글동글한 사람을 본 적이 없다. 마치 동그랗게 말아놓은 노란 병아리에게 안경을 씌운 것 같다.

 

 

다들 기다리고 있었다고는 했지만, 정작 혜민이 누나가 보이지 않았다.

 

 

회장님은?”

 

 

, 선배는 요즘 잘 못 나와요. 아무래도 곧 졸업반이 되잖아요. 이번 논문 발표 전까지는 보기 힘들 거 같아요.”

 

 

논문? 공모전이 아니라?”

 

 

절대 불변의 군복을 입고 있는 동안 내가 알고 있던 세상이 변했다. 혜민 누나가 작품을 쓰는 게 아니라, 논문을 쓴다고? 이제 졸업반이 될 사람이 벌써부터 졸업 논문을 쓸 것도 아니었다.

 

 

예지에게 더 캐묻고 싶었지만,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다들 스펙 쌓기도 바쁜 인생. 그래도 의리가 당겨 얼굴보고 밥이나 먹자고 모인 얼굴들이었다. 그리고 그런 의리가,

 

 

그리 달갑지만은 않았다.

정말, 다들 밥을 먹고 나니 곧장 한둘씩 자리를 일어났으니까. 한가한 건 휴가 나온 군인 한 명 뿐이었다.

 

 

다들 고마웠어요.”

 

 

, 적당한 관계구나 싶어 괜히 속이 쓰렸다. 사실 나도 누나 외에는 그 누구에 대해서도 궁금해 하지 않았으면서, 밀물에 길을 잃고 잠기는 섬처럼 마음이 무거워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다들 좀 너무하네요.”

 

 

안경을 쓴 노란 병아리가 나 대신 입을 삐죽삐죽 내밀었다.

 

 

예지는 약속이 없어?”

 

 

전 솔직히 다들 한 잔 정도는 할 줄 알고

 

 

순진한 후배 덕에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동시에 삼촌이 바지에 넣어둔 현찰이 따뜻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럼, 까짓, 우리 맥주나 한 잔 할까?”

 

 

그렇게 우린 인근의 술집을 찾아 몸을 돌렸다. 해가 떨어진 밤거리는 제법 쌀쌀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자연스레 우리는 서로에게 몸을 기대게 되었다. 어깨 높이에 놓인 예지의 정수리에서 달큰한 샴푸 향이 났다. 정신이 순간 아득해졌다. 혜민 누나와 함께 걸었을 땐 느끼지 못하던 무엇이었다. 생각해 보면, 혜민 누나는 향도 강렬한 편이었다. 늘 아찔한 감각을 안겨주었는데, 동그란 예지는 향도 동그랗고, 촉촉했다.

 

 

그렇게 샴푸 향에 취해 도착한 술집은 조용한 만큼 조명도 어두운 곳이었다. 예지의 입술 위로 그늘이 내려앉자 순간적으로 내 호흡이 흐트러졌다. 괜히 숨이 차는 기분이 들어 난 기지개를 펴보았다.

 

 

, 군인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다들 바로 뻗어버리니까 말이야. 괜히 졸리네.”

 

 

싱긋 웃어 보이는 예지.

여전히 조명 탓에 예지의 얼굴은 반쯤 어둠에 가려져 있었다. 그래서 더욱 예지의 콧날이 도드라져 보였다. 지금까지 동그란 안경 덕에 몰라봤었던 콧날.

난 괜히 다른 이야길 던졌다.

 

 

그런데 회장님은 무슨 논문이야? , 졸업을 당겨서 하려고?”

 

 

, 요즘 뭔가에 꽂힌 거 같더라고요. 해결하기 전까지는 나올 생각이 없데요.”

 

 

? 그럼, 동아리는? 아니, 수업은 나온데?”

 

 

,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굴러는 가요. 수업이야 단대도 다르고 하니 잘 모르겠어요.”

 

 

창작 동아리라고 해서 문예창작학과나 콘텐츠미디어학과 소속의 학생들이 있을 줄 알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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