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많은 한반도서 빙하기 견딘 인류 동아시아 문명 창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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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많은 한반도서 빙하기 견딘 인류 동아시아 문명 창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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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굴 많은 한반도서 빙하기 견딘 인류, ‘동아시아 문명’ 창조하다



1768179641495.jpg최후 빙기 때 동아시아 해안선과 구석기인의 이동 방향. 최후 빙기에 서해가 얼어 없어졌고 북위 40도 이북의 연해주는 동토였다. 고한반도는 유라시아 대륙 동쪽 끝의 유일한 동해안이었으며, 구석기 신인이 태양이 솟는 동쪽을 향해 이동해 오다가 바다에 막혀 정착한 종착지였다. 신용하 교수 제공


■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① 인류 초기 ‘고조선문명’의 발견

해 가장 먼저 뜨는 동아시아로
인류 선구자들 대장정끝 정착

옛 한반도 한강·대동강 일대

 

사람들 모여드는 곳으로 부상

농업 발달·인구밀집·지적집단
세 조건 갖춘 한반도 문명 발생


우리는 학교에서 인류 최초의 독립 문명으로서 ① 수메르 문명(약 5500년 전) ② 이집트 문명(약 5100년 전) ③ 인더스 문명(약 4200년 전) ④ 고중국(황하) 문명(3600년 전)의 4대 문명을 가르치고 있다. 예컨대, 아널드 토인비는 인류 초기에 독립 문명으로서 이 4대 문명이 주변으로 파급돼 그 후 인류 고대 위성(衛星) 문명들을 형성·발전시켜서 인류가 문명 생활을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것은 낡고 너무 부족한 학설이다. 유라시아 대륙 가장 동쪽에, 고중국 문명 형성의 기원이 된 것으로, ‘고조선 문명’(약 5000년 전)이라는 거대 문명이 하나 더 있었다. 이것은 태양이 가장 먼저 솟는 땅을 찾아 동방 끝으로 이동해 왔다가 정착한 고(古) 한반도 출신 신석기 말기·고대 초기인들이 신석기 시대 ① 한강 문화 ② 대동강 문화 ③ 요하(遼河) 문화를 하나의 인과적 체계로 묶어서 규모가 큰 찬란한 문명을 창조한 것이다. 이것은 세계사를 바꿔 써야 할 새로운 문명이다. 이것이 ‘고조선 문명’이다. 토인비도 6개의 유산된 초기 문명이 더 있었다고 유보해 뒀었다. 이번 문화일보 연재에서는 이 새 인류 문명을 탐구해 나가기로 한다.

고인류학자들의 통설에 의하면, 최초의 인류 종(種)은 약 500만 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출현해 진화하면서 먼저 유라시아 대륙으로 퍼져나갔다. 약 250만 년 전에 손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손 쓴 사람(homo habilis)’이 됐으며, 약 170만 년 전에 꼿꼿하게 걷게 된 ‘곧선 사람(homo erectus, 原人)’이 됐고, 약 20만 년 전에 돌을 깨 불을 사용하는 ‘슬기 사람(homo sapiens)’이 됐으며, 약 10만 년 전에는 지혜가 더욱 발전한 ‘슬기슬기 사람(homo sapiens sapiens, 新人)’도 출현하게 됐다. 이 ‘슬기슬기 사람’의 두뇌 용량이나 사고 능력은 현대인과 완전히 동일한 것으로 설명돼 있다.

인류가 유라시아 대륙으로 건너와서 각지로 이동하기 시작한 것은 ‘곧선 사람’ 단계부터다. 그러나 활발한 이동은 ‘슬기 사람’과 ‘슬기슬기 사람’ 단계라고 설명되고 있다. 진화고고학에서는 ‘곧선 사람’부터 이들을 모두 합쳐서 ‘구석기인’이라고 호칭한다. 이 시기는 지구 전체가 더워서 시베리아에서도 아열대 식물 열매가 열리고 매머드와 공룡이 살았다. 어디에서나 식료를 얻을 수 있었으므로, 구석기인들은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인간 무리(bands)를 이뤄 유라시아 대륙의 여러 방향으로 분산 이동했다.

구석기인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 중 하나는 맹수들과 함께 매일 찾아오는 밤의 어둠이었다. 그러므로 가장 용기 있고 호기심 많은 구석기인 무리는 태양이 맨 먼저 솟아올라 어둠을 사라지게 하고 밝은(光明) 아침이 먼저 찾아오는 해 뜨는 동방을 향해 천천히 이동하는 형세를 이루게 됐다. 고한반도와 연해주는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동쪽 끝이고 그 동쪽은 깊은 태평양 바다(동해와 오호츠크해)다. 그러므로 이곳은 해(태양) 뜨는 동쪽을 향해 수만, 수십만 년에 걸쳐 동쪽으로 이동해 온 구석기인 무리의 인류사적 대장정이 누적된 ‘종착역’(terminal) 같은 지역이었다.

17681796417535.jpg빙기 때 해안선과 슬기 사람의 주 이동 경로(20만∼5만 년 전).
17681796419793.jpg인류 최초 4대 독립 문명에 고조선 문명(그림의 A 부분)을 첨가했다. B는 수메르 문명 지역.


유라시아 대륙 동단 고한반도와 연해주 지역에 구석기인이 처음 도착한 것은 100만∼70만 년 전 무렵으로 추정된다. 한반도의 가장 오래된 구석기 유적으로, 평안남도 상원군 흑우리 검은모루 유적(약 100만∼70만 년 전)과 절골 유적(약 93만 년 전), 충북 단양군 도담리 금굴 유적(약 70만 년 전)이 이미 발굴돼 있기 때문에 이를 알 수 있다. 이 밖에 한반도·만주·연해주 일대에서 발굴 보고된 주요 구석기 유적이 50개가 넘는다.

그러나 약 5만3000년 전 구석기 인류에게 대재앙이 닥쳐왔다. 지구 기후의 급격한 변화로 혹한의 ‘최후 빙기’가 닥쳐온 것이다. 태양광선의 95% 이상이 먼지에 가려져 5% 이하만 지구 표면에 닿았다. 이 시기에는 유라시아 대륙의 북위 40도 이북 지역은 긴 겨울에는 모두 얼어붙은 동토(凍土)가 돼 생물이 생존할 수 없었다. 예컨대 우랄 지역의 1월 평균 온도는 영하 30도였다. 수마트라 섬 적도의 평균 온도는 8도에 불과했다. 그러므로 유라시아 대륙 구석기인들은 북위 40도 이남의 생존 가능한, 따뜻한 지역의 동굴을 찾아 이동한 소수 구석기인을 제외하고는 거의 사멸했다.

동아시아에서도 최후 빙기에 북위 40도 이북 지역에서는 인류가 상주(常住)하지 못했다. 물론 여름에는 사냥감을 뒤쫓아 북위 40도 이북에서 사냥하면서 계절적 일시 거주는 했다. 그러나 북위 40도 이북에 집단 상주지를 형성하고 문명을 만들지는 못했다. 동아시아의 북위 40도선은 한반도 신의주와 중국 베이징(北京)을 지나간다. 그러므로 고한반도의 압록강 최하류와 고중국의 베이징 이북은 최후 빙기 약 4만 년 넘게 인류가 상주할 수 없는 얼어붙은 동토였다. 그러므로 한국민족이 시베리아 고(古)아시아족에서 기원했다거나, 톈산산맥 또는 바이칼 호수에서 기원해 내려왔다는 학설은 기후변화를 모르던 시절의 낡은 학설에 불과하다.

동아시아의 북위 40도 이남 지역에서 구석기인들이 혹한을 피해 들어갈 수 있는 동굴이 가장 많은 지역이 바로 산지가 비교적 많은 고한반도였다. 한반도의 자연 동굴 총수의 90% 이상이 석회암 동굴이다. 한반도의 북위 40도 이남의 카르스트(Karst) 지형 석회암 지대는 한반도 중부 차령산맥·소백산맥 일대에 가장 잘 발달해 있다. 이 지역이 고한반도 ‘제1동굴지대’다. 그다음이 멸악산맥 일대의 ‘제2동굴지대’다. 중국에서는 남방 양쯔강 유역과 광시(廣西)성·구이저우(貴州)성·윈난(雲南)성 지역에 가야 석회암 동굴 지대가 나온다. 고한반도는 최후 빙기 겨울철 동토에 연접한 북방한계선의 매우 추운 지역이었다. 그럼에도 동아시아 최대 석회암 동굴 밀집 지역이었기 때문에, 기존 고한반도의 구석기인과 유라시아 대륙 동남부 해안을 따라 남방에서 꾸준히 이동해 올라온 구석기 신인(슬기슬기 사람)이 합쳐져서, 이 기간에도 종착지 고한반도는 세계 인구밀집 지역의 하나가 됐다.

또한 최후 빙기에 서해가 얼어 없어져 고중국 관내와 이어졌고, 대만과 중국 본토와도 이어졌으며, 북위 40도 이북의 연해주는 동토였기 때문에, 고한반도는 전체 유라시아 대륙의 가장 동쪽 끝 유일한 동해안이었다. 최후 빙기에도 구석기 신인이 태양이 솟는 동쪽을 향해 꾸준하게 이동해 들어오다가 바다에 막혀 더 동쪽으로 갈 수 없어서 정착하는 종착지가 고한반도였다. 약 1만2000년 전(일설 1만2500년 전), 인류는 최후 빙기의 대재난 시대를 견뎌내고 새 시대를 열기 시작했다. 지구 주변의 먼지가 걷혀 태양광선이 모두 땅에 닿으면서 기후가 대체로 오늘날처럼 온난해졌다. 지구 기후가 온난화되자 유라시아 대륙의 동토에 인접해 있던 구석기인들은 모두 동굴에서 나와 부근 강변과 해안에 움막을 짓고 새로운 용구로 마제석기(磨製石器)와 토기를 만들어 사냥·어로·식료 채집을 하면서 신석기 시대를 열었다. 구석기인이 신석기인으로 진화하게 된 것이다.

신석기 시대에 인류 최초 문명 탄생의 첫째 조건이 된 것은 신석기인들의 농업경작(agriculture) 시작이었다. 종래 사냥과 채집으로 한 가족을 부양하는 데 수천 에이커의 토지가 필요했던 데 비해, 농경을 시작하면서 약 25에이커의 토지로 충분해졌다. 그러나 농업경작이 어느 곳에서나 가능했던 것은 아니었다. 비옥한 토지, 온난한 기후, 풍부한 물과 함께 야생종(野生種)을 인공적으로 재배하고 육성하려는 의지를 가진 현명한 인간 집단이 필요했다. 농업경작은 신석기인을 특정 지역에 장기간 정착시켰다. 인간의 유랑 시대를 정착 시대로 바꾼 것이다. 농경 마을과 읍락이 형성되고 이것은 대대로 전승됐다. 신석기인의 토지에 결부된 농업경작의 장기 정착은 인류 사이 수천 개의 상호 소통되지 않는 언어족을 만들어 냈다.

사회학적으로 신석기 농업혁명은 완전히 새로운 혁명적 사회변동을 가져왔다. 식량 생산 공급의 잉여 증가는 인구 증가를 결과했다. 잉여 생산물의 축적은 분배 과정에서 갈등과 투쟁을 자주 발생시켰다. 갈등과 투쟁을 해결하기 위해 권력을 위임받은 우두머리와 그 집단이 출현했다. 가족들이 집합해 씨족이 형성되고, 씨족들이 통합해 부족이 형성됐다. 부족들 사이에 갈등과 투쟁이 일어나면, 패배한 부족의 포로는 노예가 되고 승리한 부족장과 그의 무장들은 노예를 소유하는 세습 귀족이 돼, 신분과 계급이 발생했다. 부족장들은 다른 부족들을 통합해 대부족장 또는 군장(chief)이 되고 준(準)국가인 군장사회(chiefdom)를 형성했다. 강력한 군장은 다른 군장을 통합해 고대 국가를 형성했다.

또한 잉여 생산물의 축적은 농업에 통합돼 있던 수공업을 분리시켰고, 농산물과 수공업 제품의 교환을 중심으로 한 상업이 분화됐다. 수공업의 발전으로 강한 생산용구와 무기를 만들기 위해 자연동과 주석의 합금인 청동기를 발명·제조하기 시작했고, 이어서 철기 제조가 시작됐다. 이 최초의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에서 인류는 최초의 문명을 탄생시켰다. 인류 최초 문명 탄생의 첫째 조건이 바로 신석기 농업혁명, 청동기와 철기 제조, 고대 국가의 형성, 신앙의 통일, 언어의 통일과 문자 발명, 초기 과학과 문화예술의 성립 발전 등이었다.

따라서 인류 최초의 문명은 말기 신석기인이 거주한 모든 지역에서 균등하게 탄생한 것이 아니라, 매우 일찍 농업경작이 성립 발전하고, 인구가 밀집되고, 지적 성능을 활용한 과학적 수공업 기술이 성립되고, 고대 국가가 형성된 특정 지역에서 형성되고 탄생했다. 이 최초의 특정 지역 구심점이 유라시아 대륙의 두 곳에 뚜렷이 출현했다. 그 하나가 동방 고한반도의 한강과 대동강 유역에 성립돼 전파되기 시작한 ‘고조선 문명’이다. 다른 하나가 서방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초승달 지역에 성립돼 전파되기 시작한 ‘수메르(메소포타미아)’ 문명이다.



유라시아 분포한 우랄·알타이어족은 고조선語 쓰던 기마민족에 기반



17681796421875.jpg고조선 해체 후 부여·고구려·백제·신라 다국시대에 그들의 언어는 이미 고조선어를 공통조어로 계승했기 때문에 서로 통역 없이 소통했다. 이를 입증하는 중국 고문헌 기록은 적지 않다. 사진은 단군이 천제를 올렸던 곳이라 전하고 있는 인천 강화군 마니산 정상의 참성단. 자료사진


■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13) 우랄·알타이어족 기원

- 한민족 문명학

고조선 세운 한·예·맥 부족 모두 ‘밝’족 언어에 기초… 제후국 부족들도 공통 언어로 사용

 

유럽까지 대이동한 훈족·튀르크족·위구르족, 현지인과 융합하며 고조선語 기반한 우랄·알타이어족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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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언어는 사회학적으로 인간이 집단을 이뤄 생활할 때 의사소통을 위해 발명한 도구다. 그러므로 인류의 언어는 이미 구석기인 무리(bands)에서 발명됐음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고대 고(古)한반도 사람들을 한 ‘민족’ 공동체로 결합시킨 가장 기초적 결합요소는 ‘고대 한국어’라는 ‘언어의 공동’이었다. 민족은 일차적으로 ‘언어공동체’인 것이다.

한국어는 언제 어떻게 형성됐을까? 언어학자들은 미시적으로 현대언어의 구조적 친연성을 탐구해 소급해서 어족을 분류하고 기원을 찾아 큰 성과를 냈다. 결론부터 말하면 한국어는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한다. 언어학자들이 밝혀낸 우랄·알타이어족의 특징은 ①주어(S)+목적어(O)+동사(V)의 어순 ②후치사 ③교착어 ④모음조화 ⑤두음법칙 ⑥부동사의 중요한 역할 ⑦모음교체 및 자음교체의 없음 ⑧관계대명사 및 접속사의 없음 ⑨어휘의 성별이 없음 등이다. 한편 역사사회학자들은 반대로 먼저 ‘민족형성과 이동’을 거시적으로 탐구해 한국어 및 한국민족의 기원과 우랄·알타이어족의 기원을 동시에 찾아낼 수 있다. 이에 의하면 고조선 문명의 고조선어(고대 한국어)가 ‘우랄·알타이어족’의 공통조어(共通祖語)이고 그 기원임이 밝혀지게 된다.

‘고한반도 초기 신석기인들’은 기후가 온난화돼 북위 40도 이북에서도 인간의 상주와 농경이 가능하게 되자, 약 9000년 전부터 북위 40도선을 넘어서 이동하는 씨족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고한반도의 북위 40도선 이남에 그대로 남아서 농경 등을 영위한 초기 신석기인들은 ‘한’부족을 형성하고 동시에 언어도 ‘한’부족 언어를 형성하게 됐다. 북위 40도선을 넘어서 북상해 요동반도·대요하 동쪽 태자하·북류 제2송화강·눈강·목단강·수분하·흥개호·혼강 일대를 중심으로 이동해 정착한 신석기인들은 ‘예’(濊)부족을 형성해 역시 ‘농경’을 시도하면서, 태양을 숭배하며 ‘범’(虎)토템을 갖고, 언어도 ‘예’부족 언어를 형성하게 됐다. 북위 40도선을 넘어서 북상해 대요하 이서의 대릉하·소릉하·노합하·시라무렌강 유역에 이동해 정착한 신석기인들은 ‘맥’(貊)부족을 형성, 역시 ‘농경’을 시도하면서 태양을 숭배하며, ‘곰’(熊)토템을 갖고 언어도 ‘맥’부족 언어를 형성하게 됐다.

‘한’ ‘예’ ‘맥’부족이 각각 언어를 달리 분화해서 형성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모두 ‘고한반도 초기 신석기인 유형’(‘밝’족)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 근저에는 고한반도 초기 신석기인 시대의 ‘원시 공통어’(‘밝’족 언어)의 통합적 기초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한’부족과 ‘맥’부족과 ‘예’부족의 3부족은 연맹해 기원전(BC) 30세기∼BC 24세기에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인 ‘고조선’을 건국했다. 따라서 ‘고조선 언어’는 우선 ‘한족 언어’와 ‘맥족 언어’와 ‘예족 언어’의 3부족 언어의 통합으로 형성됐다. 고조선어 형성에서도 제왕을 배출한 ‘한’족의 언어와 왕비를 낸 ‘맥’족 언어의 비중과 영향력이 더욱더 컸을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특히 정치적 지배용어의 어휘들은 그러했을 것이다.

예컨대, ‘한’족은 ‘해’(태양) 숭배의 ‘새’ 토템 부족이었으므로 족장을 ‘한’으로 호칭했는데, ‘맥’족은 ‘곰’토템 부족이었으므로 족장을 ‘님검(검, 곰)’(임금)으로 호칭했다. 고조선어에서는 제왕의 어휘에 ‘한’과 ‘님검, 검’이 병존했다. 그러나 공식적으로는 대부분 ‘한’(Han)이었다.

고조선 문명권에서 처음에 ‘한’(Han)은 제왕이었고, 제후나 지방장관은 ‘가’(Ga)였다. 그러나 고조선의 발전과정에서 제후가 제왕이 되거나 자칭했을 때에는 ‘가한’(Ga+Han), ‘간’(Gahn), ‘칸’(Kahn)이라고 호칭하기도 했다. 인류사에서 제왕을 ‘한’(Han), ‘간’(Gahan), ‘칸’(Kahn)으로 호칭한 국가와 민족은 모두 원래 고조선 문명권의 포함된 국가나 민족뿐이었다.

고조선이 후국(侯國)제도를 채택해 고대연방제국으로서 여러 부족과 원민족들이 고조선 연방국가에 포섭되고 고조선 문명권이 형성되자, 고조선 문명권에 속한 후국 부족들과 원민족들은 고조선어를 분유해 자기 부족어 또는 원민족어를 통합시켰으므로 고조선어는 고조선 문명권의 공동의 언어가 됐다. BC 108년 고조선 해체 후에 그 후예들이 유라시아 대륙 각지에 흩어져 민족이동을 했어도 그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조어(祖語)로 해서 변동해 고조선어와 매우 밀접한 친연성을 갖게 됐다. 즉 고조선 문명권에 속했던 민족들의 언어와 그 후예들의 언어는 ‘고조선어’를 그들 언어의 공통 조어로 공유하게 된 것이었다.

우선 한국역사에서도 고조선 해체 후 부여·고구려·백제·신라 다국시대에 그들의 언어는 이미 고조선어를 공통조어로 계승했기 때문에 서로 통역 없이 모든 나라와 지역들에 고조선어가 공동으로 통용됐음을 단편적 고문헌으로도 논증할 수 있다. ‘삼국지’ 위서 동이전 고구려전에서는 동이의 옛말에 의하면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 하는데, 언어와 풍속 등은 부여와 같은 점이 많다”고 했다. ‘후한서’ 동이열전 고구려조에서도 “(고구려는) 부여의 별종이라고 하는데 그러한 까닭으로 언어와 법칙이 많이 동일하다”고 기록했고, 이어서 구려조에서는 “구려는 일명 맥(貊)이라 부른다”고 했다. 즉 맥족인 부여·구려·고구려는 언어가 동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양서’ 백제조에서는 “백제는(…) 지금 그 언어와 복장이 대개 고구려와 동일하다”고 했다. 백제의 지배층이 부여계임은 여러 곳에 기록돼 있다. 백제와 고구려는 언어가 동일한 것이었다.

그러면 신라는 어떠한가? 신라 지배층은 ‘한’계이므로 이 점이 특히 주목된다. ‘양서’ 신라조에서는 “(신라) 언어는 백제를 기다린 이후에 통했다”고 기록했다. 고중국인들은 언어가 다른 신라인과는 언어소통을 못 하고, 신라인과 언어가 동일한 백제인을 기다려서 통역을 시켜서야 소통할 수 있었다. 즉 신라와 백제는 언어가 동일해 소통되고, 고중국인만 소통되지 않은 것이었다.

그러면 ‘예’족 계열의 언어는 어떠한가? 옥저(沃沮)가 바로 ‘예’족의 국가였는데, ‘후한서’ 동옥저조에서는 “(동옥저는) 언어·음식·거처·의복은 구려(句麗)와 비슷하다”고 했다. ‘삼국지’에 동옥저전은 “그들의 언어는 구려와 크게는 같지만(大同) 때때로 작게는 다른 부분도 있었다(小異)”고 했다. 즉 ‘한’족·‘맥’족·‘예’족의 언어는 이미 고조선 시기에 고조선어로 통합돼 하나의 민족언어로서 고조선어가 형성됐고, 잔존한 부족언어들은 방언(사투리) 정도로 남은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조선 해체 후 삼한·삼국시대에 들어가서도 이미 동일한 고조선어를 공통조어로 분유했기 때문에 삼한·삼국 등 나라는 나뉘었지만 언어는 하나의 민족어를 사용하면서 의사소통에 불편이 없었던 것이다. 주시경 선생은 고조선(단군조선) 시기에 자연스럽게 조선어가 형성됐다는 견해를 일찍이 갖고 있었다.

그러면 고조선 문명권을 구성한 고조선 후국(侯國)들의 언어는 어떠했을까? ‘위서’ 실위전에서는 “실위어(室韋語·원몽골어)는 고막해(庫莫奚), 거란, 두막루(豆莫婁) 나라와 동일하다”고 했다. 또한 ‘위서’ 두막루 전에서는 “두막루는 옛 북부여(北夫餘)이다”라고 했다. 위의 두 자료를 합해보면, 북부여어(北夫餘語·즉 부여어)와 원몽골어(실위어)와 고막해어 그리고 거란어가 동일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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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식 선생은 선비(鮮卑)는 북부여의 별종이라고 했다. 따라서 ‘부여어’와 ‘선비어’는 동일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통전’(通典)은 “고막해는 그 선조가 동부선비(東部鮮卑)의 별종이다”라고 했다. ‘북사’(北史) 해전(奚傳)에서는 “해(奚)는 본래 고막해로 그 선조는 동부호(東部胡)로서 우문(宇文)의 별종이다”라고 했는데, 우문씨는 동부선비의 지배씨족의 하나였다. 고조선 후국들인 실위(원몽골)·선비·고막해의 언어는 부여어와 동일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환(烏桓)은 선비와 고막해와 함께 동호(東胡)를 구성했던 3대 맥족계열 고조선 후국들이었으므로, 오환어(烏桓語)가 선비어·고막해어와 동일했을 것임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정령(丁零, 원돌궐, 철륵·鐵勒, 고거·高車)과 유연(柔然)은 스스로를 고조선계(古朝鮮系)·단군계(檀君系)라고 주장했으므로, 그들이 고조선어를 분유(分有)했을 것임은 물론이다.

일본은 고조선 후국은 아니었으나 고조선 국가 해체 전후 고조선 계열 사람들이 규슈(九州) 등 일본열도에 건너가 정착해서 고조선어를 공통조어로 한 언어를 사용하면서 최초의 일본 고대국가를 수립해 운영했기 때문에, 언어의 구조와 형태에서 일본어는 선주민 어휘를 흡수하면서 고조선조어의 한 갈래 흐름으로 형성됐고, 한국어와 함께 우랄·알타이어족의 하나로 형성된 것이다.

고조선 연방국가가 BC 108년에 해체되자, BC 2세기부터 기원후 1세기에 고조선 후국들의 민족이동에 의한 동아시아에서의 ‘민족대이동’이 일어나게 됐다. 고조선 연방제국의 후국들 가운데서 서변후국이었던 유목기마민족인 훈(Huns·산융), 불가르(Bulgar·불령지, 불도하), 아발(Avar·유연), 마자르(Magyar), 튀르크(Turks·정령, 돌궐), 위구르(uyghurs)족 등은 서방으로 ‘말’을 타고 마차를 끌며 ‘민족대이동’을 감행해 카프카스 지방 등 중앙아시아에 정착했다. 이 고조선 문명권의 서변 유목기마민족의 중앙아시아로의 민족이동과 정착 활동으로 중앙아시아의 대부분이 고조선어를 공통조어로 한 우랄·알타이어족이 된 것이다.

수세기 후에 훈족, 불가르족, 아발족, 마자르족, 위구르족, 튀르크족 일부는 다시 서방이동을 감행해 발칸반도, 중부유럽, 북유럽으로 민족대이동을 계속했다. 그들이 정착을 원한 곳은 이미 선주민들이 있었기 때문에 그사이 온갖 갈등과 전쟁과 타협의 역사가 있었다. 그들이 민족이동을 감행해 정착한 곳에서 선주민들의 어휘들을 대폭 채용, 융합시켰다 할지라도, 그들의 언어 구조(문법)가 ‘고조선 언어’였다면 고조선 언어를 조어와 문법으로 한 우랄·알타이어족이 형성되게 되는 것이다.

발칸반도의 불가리아와 헝가리, 중·북부 유럽의 바스크, 에스토니아, 핀란드, 갈레리아, 러시아의 수많은 타타르 공화국 언어가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게 된 연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오늘날 유럽과 중앙아시아에서 우랄·알타이어족의 분포는 BC 2세기경부터 시작된 ‘고조선어’를 사용하는 민족들의 ‘세계사적 민족대이동’의 최후의 정착결과를 나타내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고조선 문명에 속했던 다수 민족의 이러한 거대한 ‘민족대이동’을 가능하게 한 동력은 그들이 ‘말’(馬)을 사용하는 ‘기마민족’들이었기 때문이었다. 고조선어 사용 후국 민족들의 민족대이동의 경로를 세계언어지도에 그려보면 <그림>과 같다.

‘민족대이동’의 경로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서유럽까지 들어갔던 고조선 어족 사용 기마민족들은 인도·유럽어 사용 선주민들과 타협해 지금은 헝가리와 불가리아(제1제국)를 제외하고는 북방으로 밀려 핀란드, 에스토니아, 갈레리아 지방에 집약, 정착했다. 또 아발족 일부는 피레네 산맥 속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저항세력이 약했던 광대한 시베리아 일대는 대부분 우랄·알타이어족권이 됐다. 오늘날 언어학자들은 우랄·알타이어족의 개념을 세분해 우랄어족과 알타이어족과 추크치·캄차카어족으로 분류하고 있음을 본다. 또 언어학자에 따라서는 한국어, 일본어, 핀란드, 헝가리어, 튀르크어를 각각 독립한 언어유형으로 분류하고자 하는 경향도 있다. 21세기 현재의 극도로 분화 변용된 언어생활만 횡적으로 보면 이러한 주장에도 근거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역사적으로 기원을 찾아보면, 19세기 말까지는 위의 언어들이 모두 ‘우랄·알타이어족’으로 개념화하는 것이 정확했으며, 더 소급해 ‘우랄·알타이어족’의 기원을 더 찾아보면 그것이 바로 고조선 문명의 ‘고조선어’임을 알 수 있다. ‘우랄·알타이어족’의 기원은 고조선 문명의 ‘고조선어’이고, 이것이 현대의 우랄어족, 알타이어족, 추크치·캄차카어족의 ‘공통조어’인 것이다. 


■ 용어설명

조어(祖語): 하나의 언어가 장기간에 걸쳐 둘 이상의 다른 언어로 분화됐을 때 그 근원이 되는 언어를 이르는 말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극동인 고(古)한반도와 만주·연해주 일대에서 발전한 고조선 문명의 ‘고조선 조어’가 기원전 2세기쯤 연방국가의 해체를 기점으로 서방으로, 동남방으로, 북방으로 민족대이동을 감행, 정착해서 ‘우랄·알타이어족’이 형성되고 그 후에 분화되고 있는 것이다.


태양·하느님이 단군신앙으로 통합… 흉노·투르크 國敎로도 발전



17681796428139.jpg고조선 시기 진국 지역 농경문 청동기(뒷면)에 새겨진 ‘솟대’와 그 끝의 ‘새’(대전 괴정동 출토, 왼쪽 사진의 원). 오른쪽 사진은 현대에 복원된 솟대. ‘단군신앙’은 우주를 하늘과 땅, 지하의 3차원 세계로 나누었고, ‘나무’와 ‘새’는 이 3세계를 소통하는 통로로 여겼다. 자료사진


■ 신용하의 인류 5대 ‘古朝鮮문명’ - (15) 고조선 문명권 종교

- 한민족 문명학

단군·환웅·환인 숭배 3신교 형성… ‘삼위일체’로 여기며 사실상 인류 최초의 일신교

 

신성한 ‘소도’에 ‘솟대’세웠는데 끝에 나무로 만든 새 부착… 단군·인간 이어준다고 여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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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조선문명은 인류 최초의 단립벼·콩 재배와 농업경작을 시작했고, 농업경작은 처음부터 ‘햇빛’(태양광선)과 기후·기온에 크게 좌우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태양 숭배’가 매우 일찍 형성됐다. 고조선문명의 태양 숭배는 태양이 있는 ‘하늘’ 숭배에 연결되어 ‘태양=하느님’ 숭배의 사상과 양식을 형성하기에 이르렀다.

BC 30세기∼BC 24세기 고조선국가를 건국한 후에는 개국시조 ‘단군’이 고조선 사람들의 숭배의 대상이 됐다. 고조선문명권에서는 단군을 자기 민족의 조상임과 동시에 개국시조로 신앙하는 ‘단군 숭배’가 형성됐다. 개국시조 단군이 서거하자 고조선인들은 단군(의 영혼)이 그의 조부(환인), 부모(환웅)가 계신 하늘로 승천했다거나, 신성한 산의 산신으로 됐다가 승천한 것으로 설명하고 또 믿었다. 여기서 기존의 태양=하느님 숭배와 단군 숭배는 하늘 세계에서 구심점이 합쳐져서 하나로 통일됐다고 해석할 수 있다.

고조선에서는 본래 제왕을 ‘한’이라고 호칭했고, 그 초대 제왕이 단군이었으므로, 한족 계열의 고조선 남방에서는 조상신이 된 개국시조 ‘한’(단군)이 승천하여 계신 하늘을 ‘한울’(‘한’의 집·전당)이라고 사유하여 ‘한울=하늘=하느님’을 숭배하는 신앙이 형성됐다. 북방(예·맥 계열)에서는 단군이 승천하여 계신 하늘을 아예 ‘단(하늘, 天)이라 했고, 시조신 ‘단군이 계신 전당·굴=단굴’이라고 생각하여 ‘단굴 숭배’ 신앙이 동일하게 형성됐다. ‘태양=하느님(天)=단군=단굴’ 숭배가 하나의 ‘단군신앙’(Tengrism, Tangrism) 체계로 통합되어 고조선문명의 신앙의 특징으로 형성된 것이다.

이에 고조선문명권에서는 ①단군과 ②그의 조상 환웅 및 ③환인(하느님)의 3신을 숭배하는 고조선 신앙인 삼신교(三神敎 또는 神敎)가 형성 보급되어 종교와 신앙의 공동성을 형성하게 됐다. 박은식은 고조선의 종교는 바로 삼신교이고, 단군신앙이라고 하였다.

17681796432607.jpg불가리아 제1제국의 깃발(8세기, 위 사진)과 카즈흐스탄의 국기(21세기 초반, 아래). 신용하는 ‘단군신앙’ 상징이 들어 있다고 주장한다.

단군신앙에서는 하느님(환인)·환웅·단군은 삼위일체의 하나로 통합되어 ‘단군이 곧 하느님’이오 ‘하느님이 곧 단군’으로 신앙된 것이었다. 그러므로 고조선문명권에서는 아예 ‘단(Tan, Dan)’을 ‘하느님’ ‘한’과 동일한 용어로 사용하였다. 즉 고조선 건국 후 성립된 단군신앙은 밝은 태양과 함께 푸른 하늘 세계의 하늘 궁전에 계시는 ‘환인’ ‘환웅’ ‘단군’의 3신을 통합하여 대표적으로 ‘단군’을 조상신으로서 숭배하는 신앙이다.

단군신앙에 의하면, 환인은 ‘하느님’(上帝)에 해당한다. 환웅은 하느님(환인)의 아들로 하늘 궁전에서 태어나서 홍익인간(弘益人間)하고 재세이화(在世理化)하라는 소명을 갖고 지상으로 내려왔기 때문에 신인(神人, 天王)이다. 단군은 지상에서 ‘곰족’과 혼인한 환웅의 아들로 태어나서 나라를 세워 ‘홍익인간’ ‘재세이화’의 원리로 백성을 교화시킨 지상의 직계 조상인 인간 왕검(王儉, 天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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