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지망 전교 1등 여고생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사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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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대 지망 전교 1등 여고생이 마르크스주의자가 된 사정에 대하여

하쿠오로 0 79,305 08:53

행정구역으로는 서울이지만 인근 경기도 광명시보다 집값이 싼 어떤 동네에 마르크스주의에 관한 책을 쓰는 작가가 한 명 살고 있었다. 이 작가는 마르크스주의가 21세기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더 많은 사람이 마르크스주의를 알아야 행복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 시대착오적인 주장에 넌더리가 난 50대 남성은 작가의 집까지 찾아가서 꼬치꼬치 따지기로 했다. 인공지능과 로봇이 등장하는 이 첨단의 시대에 한물도 아니고 두물 간 마르크스라니! 한심하지 아니한가.

 

남자: 그러니까 마르크스주의가 이 시점에 필요하다고,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는 겁니까? 그게 작가님의 주장입니까?

 

작가: 그렇습니다. 특히 인공지능과 로봇이 등장하는 지금 시점에서 더욱 그러합니다.

 

남자: 19세기 인물인 마르크스는 인공지능의 ‘인’ 자도 몰랐을 텐데, 그게 말이나 됩니까? 마르크스가 살던 시대와 지금은 근본적으로 다른데, 마르크스주의가 무슨 21세기를 구원할 것처럼 얘기하다니요.

 

작가: 구원할 수 있습니다.

 

남자: 하하. 말로는 뭔들 못 하겠어요. 아무튼 본격적으로 대화를 나누기 전에 왜 이렇게 갑작스럽게 방문하게 됐는지 이유를 말씀드리죠. 우리 아이가 고2입니다. 자랑 같아서 얘기하기가 좀 그렇지만 공부를 제법 잘해요. 전국 자사고에 다니고 있고 거기서도 최상위권이죠. 원래 의대를 지원할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회학과를 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작가: 그래서요?

 

남자: “그래서요”라뇨! 왜 남의 일처럼 얘기하시나요?

 

작가: 무슨 말씀인지….

 

남자: 세상에나 의대를 놔두고 사회학과를 지원하겠다니 부모로서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 아니겠어요? 이게 다 작가님 때문이라고요.

 

작가: 그게 왜 저 때문입니까?

 

남자: ○○고등학교에서 강의하신 적 있으시죠?

 

작가: 아, 거기서 저자 특강으로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강의했지요.

 

남자: 우리 애가 그 특강을 듣고서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 작가님 책 여러 권을 도서관에서 빌려 읽고서는 사회학과를 가겠다고 하는 거 아니에요. 이제 상황을 이해하시겠어요?

 

작가: 음…. 아이가 부모의 기대와 다르게 진로를 선택하니 답답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아이 생각도 존중할 필요가 있으니 일단 아이와 진지하게 대화를 해보시는 게 어떨지요.

 

남자: 사회학과를 선택한 이유부터가 잘못됐으니까 그러는 거죠. 우리 애가 지금 마르크스주의에 관심이 생겨서 사회학과를 지망하는 거잖아요, 마르크스주의!

 

작가: ….

 

남자: 제가 오늘 여기에 온 이유는 작가님의 주장을 논파하고 바로잡기 위해서입니다. 그 과정에서 마르크스주의의 한계와 오류가 드러나면 우리 아이도 생각을 고쳐먹고 다시 의대로 진로를 선회하지 않겠어요?

 

작가: 아이의 진로 걱정으로 일부러 여기까지 찾아오는 수고를 감수하시다니, 저도 자식을 키우는 부모로서 그 절실한 마음을 이해 못 하는 바는 아닙니다. 건전하고 생산적인 논쟁이라면 언제든지 환영입니다만, 아이의 진로 문제 때문에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려우신 상태 같아 좀 우려가 되네요.

 

남자: 허락해 주신다면 앞으로 나눌 대화를 녹취해서 아이에게 들려줄 생각입니다. 아이가 듣는데 아비로서 도에 어긋나는 태도를 보일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녹취가 저에게 족쇄로 작용할 테니 작가님도 안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작가: 하하. 그렇다면 지금 바로 녹취를 시작해 주십시오. 너무 흥분하신 것 같아 불안하던 참입니다.

 

남자: (스마트폰 녹취 기능을 활성화하며) 불안하셨다면 사과드립니다. 자식 문제이다 보니 아무래도 차분하게 말하기 어려운 게 제 솔직한 심정입니다. 자식의 미래를 걸고 작가님과의 결투에 나서는 셈이니까요. 작가님은 마르크스주의의 명운을 걸고 결투에 임하시는 거고요.

 

작가: 어이쿠. 이 보잘것없는 작가의 어깨 위에 무슨 마르크스주의의 운명씩이나 걸려 있겠습니까. 그동안 써온 제 글에 대한 신뢰가 걸려 있을 따름이죠. 어쨌든 자제분의 진로 문제도 연관되어 있으니 저도 성심성의껏 진심을 담아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의대 입학이라는 거사를 눈앞에 둔 자식에게 똥물, 아니 빨간 물을 튀기다니. 작가에게 온갖 분노와 경멸의 표정을 숨기지 않던 남자는 녹취가 시작되자 돌연 숙련된 배우처럼 태도를 전환한다. 자식에게 멋진 목소리를 들려주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연기력으로 승화된 결과인가. 얼마나 지속 가능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시대착오적이라는 비아냥과 손가락질 따위야 수십 year년 동안 견뎌낸 질경이 같은 작가지만 이런 상황은 난생처음인지라 어안이 벙벙하다.

 

남자: 저도 마르크스주의가 뭔지 대충 압니다. 한마디로 평등하게 살자는 거잖아요. 평등? 뭐 좋다 이거예요. 한때 마르크스가 세상의 절반을 홀렸던 시절도 있었으니까요. 자본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으로 나뉘어서 냉전이랍시고 서로 팽팽하게 줄다리기했죠. 그런데 그 결과가 어떻습니까? 자본주의는 승승장구하고 있고 사회주의는 쫄딱 망했잖아요. 저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예전에 <똘이장군>, <해돌이>, <추적 11호> 같은 반공 만화 읽고 독후감 쓰곤 했어요. 저랑 비슷한 연배시니까 아시잖아요? 그 만화들.

 

작가: 네. 저도 독후감 쓰고 상장도 받았죠.

 

남자: 물론 그때는 냉전 시기이다 보니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대해서 과도하게 악마화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저도 그 정도는 알아요. 나 그렇게 꽉 막힌 사람 아니에요. 그런데 보세요. 지금은 심지어 마르크스주의나 사회주의를 위협적이라고 느끼는 사람조차 거의 없어요. 영향력이 없으니까요. 싸우러 링에 올라왔는데 상대 몸집이 너무나 왜소하고 깡말라 서 있는 것조차 불쌍해 보인단 말이에요. 그게 바로 마르크스주의와 사회주의의 현실이에요.

 

작가: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자제분이 시대착오적이고 허무맹랑한 얘기에 홀려서 관심을 가지게 됐다는 얘기가 되는데요?

 

남자: 아니, 무슨 말을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 애 아이큐가 얼마인지 알아요? 무려 156이에요. 메시지를 공격하기 어려우면 메신저를 공격하라더니, 딱 그렇게 논쟁을 하시네. 이거 정말 너무 더티한 거 아닌가요?

 

작가: 그렇게 받아들이셨다면 미안합니다. 하지만 말씀하신 것처럼 그렇게나 똑똑하고 성실한 자제분이 진지하게 관심을 가지게 된 사상이잖아요. 그렇다면 일단 아이가 도대체 무슨 얘기를 듣고 관심을 가지게 됐는지 알아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게 좋지 않을까요?

 

남자: 음…. 하긴 우리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닌데 도대체 무슨 얘기를 듣고 이렇게 됐는지 궁금하긴 합니다.

 

작가: 일단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대결에서 자본주의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고 하셨는데, 그 얘기는 잘못된 내용입니다.

 

남자: 무슨 얘기죠? 엄연한 역사적 팩트를 부정하려는 건가요? 북한이나 쿠바가 아직 남아 있다고 억지를 부리려는 건가요?

 

** 제 신간 <오십에 읽는 자본론> 도입부입니다. 이후 작가, 남자, 고2 딸이 만들어나가는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사건이 전개됨에 따라 마르크스주의를 다루는 대화 내용도 더욱 깊어지고요. 예상을 뛰어넘는 사건 해결 방식, 그리고 의외의 반전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세상에 둘도 없는 소설 형식의 마르크스주의 교양서입니다. 지식과 재미 두 마리 토끼를 야무지게 잡았습니다. 십대 청소년도 술술 읽을 수 있을 정도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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