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류'와 '왜곡' 바로잡아야 할 대구 근대역사 현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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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류'와 '왜곡' 바로잡아야 할 대구 근대역사 현장

콘텐츠마스터 0 48,071 08.14 2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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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멘트]

올해는 광복80주년이자, 대구에서 애국청년들의 비밀결사조직으로 출발한 광복회 설립 110주년을 맞는 해입니다. 대구시를 비롯한 지자체들이 대구 근대역사를 기념하고 알리기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사실과 다른 오류가 방치되거나 왜곡돼 바로잡아야 할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바로잡아야 할 대구 역사현장을 우성문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기사내용]

1915년 8월 25일 박상진 등 대구 청년들의 비밀결사로 시작해 팔도지부와 만주사령부까지 확산했던 항일독립투쟁 조직 대한광복회.

올해 설립 110주년을 맞았지만, 광복회가 처음 결성된 장소인 지금의 달성공원에는 이런 역사를 새긴 기념물이 없습니다.

[황수진 / 대구근대역사관 학예연구사]

"1910년대 대구의 독립운동의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광복회가 결성되었던 달성토성에 아무 표식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쉽고요 대구시민들이 그런 내용을 알 수 있도록 안내판이 하나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달성공원’이라는 명칭도 일제가 민족적 정기를 짓밟은 우민화정책의 잔재로, 본래대로‘달성토성'으로 복원해야 하지만, 고쳐지지 않고 있습니다.

역사적 사실과 다른 위치에 기념물이 세워진 경우도 있습니다.

국채보상운동 확산을 위한 대구군민대회가 열렸던 북후정.

문헌에는 북후정 위치는 옛 대구읍성 서쪽편이며 옛 서문시장 끝부분이라고 기록돼 있지만, 대구시가 옛 대구시민회관, 지금의 대구콘서트하우스 자리로 잘못 알고 엉뚱한 곳에 국채보상운동 기념비를 세웠습니다.

국채보상운동을 최초 발의한 장소인 광문사터 기념비도 수창초등학교 담장 옆에 조성됐는데, 실제 광문사 자리였던 경상감영 관풍루 근처 옛‘취고수청’자리와는 완전히 동떨어졌습니다.

‘취고수청’이 있었던 지금의 국채보상로 어느 식당 앞 길바닥에 ‘광문사 자리’라고 새겨 둔 작은 동판 하나 있지만,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길도 끌지 못합니다.

[스탠드업] 우성문 기자 / [email protected]

"국채보상 의연금 수납과 보관 장소였던 수창사는 현재의 서문로2가 한 빌라 자리에 있었는데, 수창사 자리임을 알리는 표지도 없고, 덩달아 시민들의 관심에도 멀어져 있습니다."

근대 대구사의 중요한 역사 공간들이 경상감영을 중심으로 큰 대로에 위치해 있음에도 중구청이 ‘근대골목투어’라는 역사관광 사업을 추진한 것도 사실 왜곡의 소지가 있습니다.

독립운동의 위대한 역사가 작은 골목에서 일어난 소소한 일처럼 격하돼 인식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형석 / 대구근대역사관 관장]

"근대를 맞이하면서 도로가 만들어지고 그 도로를 통해서 여러 가지 식민지배기구들이 만들어지고 그런 과정을 거치는데 그런 부분들을 우리가 '골목'이라는 용어로 접근해버리면 역사적 실체하고는 조금 다른, 상당히 축소되는 그런 내용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역사를 올바르게 기억하는 것,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B tv 뉴스 우성문입니다.


 

 

@mrspark1225

그래서 달성공원이라는 동물원으로 만들었지.

2.28독립선언 국채보상운동

이런 독립운동의 시발지였던 대구는

이승만의 보도연맹학살 사건으로 공포에 시달렸다.


쌀이라도 배급받으려 이름 올렸던 많은 양민들을 학살했고

그 후 빨강이라는 딱지가 붙을까봐 더 강하게 반공과 멸공을 외치게 됐다

 

서울에는 창경궁 자리에 창경원이라고

유원지 만들어 놓았던 시절도 있었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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