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따스해진 날에 새싹들이 고개를 내밀던 때에 나의 부모는 땀을 흘리며 그들의 밭을 일구었다.
딸 셋을 그리 키워냈다.
봄에 꽃구경을 시켜주고 싶어서, 여름에 시원한 수박을 먹었으면 해서, 가을에 새 옷을 선물하고 싶어서, 겨울에 추위에 떨지 않았으면 해서.
봄은 그 모든 바람의 시작이었다.
새벽부터 온몸이 땀에 젖도록 밭을 일궜다.
씨앗을 잘 심지 못하면 싹이 나지 않는다.
싹이 나더라도 밤낮으로 물을 주지 않으면 잎이 자라지 않는다.
잎이 나더라도 들여다보지 않으면 벌레가 들끓는다.
밭에서 자라던 그들의 새싹은 세 딸과 같았다.
밭도, 아이도, 그들의 돌봄 속에 무럭무럭 자라났다.
막내인 나는 봄에는 꽃구경하고, 여름엔 시원한 수박을 먹고, 가을엔 새 옷을 입고서, 겨울엔 따뜻한 이불 속에 있었다.
잘 가꿔진 밭에서 쑥쑥 컸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언니들이 독립한 후에는 부모님과 셋이 지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봄은 년 중 가장 바쁜 계절이었고 그들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 부족한 시간 속에서, 그들이 흘린 땀 속에서 나는 자랐다.
열다섯, 질풍노도의 시기라는 그 나이에 나는 매서운 바람이었다.
오매불망 언제 오나 부모님의 트럭을 찾던 내 눈빛이 변했다.
하교 시간에 맞추어 오던 그들의 흙 묻은 장화와 낡은 트럭이 부끄러워졌다.
함께 집으로 가던 때면 엄마는 종알종알 오늘은 어땠어? 친구들이랑은 잘 놀았어?' 하며 묻곤 했다.
늘 듣던 엄마의 물음이 그날따라 귀찮았고, 그날따라 엄마의 파란 장화에 묻은 흙이 많았다.
길가에 줄지어 흔들리던 분홍색 벚꽃잎이 샘나게 예뻤다.
그래서 심술을 부렸다.
“엄마, 다른 애들 엄마 아빠는 다 승용차 타고 다니잖아. 멀끔한 옷 입고 다니잖아… 나 데리러 올 때만큼은 좀 씻고 오면 안 돼? 엄마는 왜 만날 더러운 장화야? 우리도 승용차 타면 안 돼?”
마음을 떠다니던 말이 목구멍으로 쏟아져 나와버린 때에 엄마의 표정을 기억한다.
주워 담을 수 없게 쏟아져 버린 말들이 엄마의 작은 가슴 밭에 기어이 구덩이를 파냈다.
내가 나를 키운 밭을 갈아엎었다.
커다란 쇠쟁기를 꽂아 사정없이 푹푹 헤집었다.
“응, 알았어. 그러자. 그렇게 하자.”
목이 메 간신히 말하는 엄마의 목소리를 들었다.
만개한 벚꽃 사이를 달리는 그 트럭 속 땀에 젖은 엄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얼굴에, 그 목소리에, 봄바람에 날아가던 정신이 들었다.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달리는 트럭 안에서 박박 눈을 문질렀다.
아마 엄마는 나 때문에 울지 못했으리라.
서럽게 우는 아이의 앞에서 부모는 그저 헤집어진 가슴을 부여잡았을 테니.
“나 이제 버스 타고 다닐게.”
나는 이제 버스를 타겠노라, 선언했다.
새벽에 첫차를 타지 않으면 다음 버스는 시간 뒤에 오는 시골에서 부모는 아침잠이 많은 딸을 위해 트럭을 몰았다.
그리고 나는, 그런 부모의 사랑을 제쳐두고 내 알량한 자존심 때문에 그렇게 이야기했다.
그 뒤로 부모님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아무도 없는 집에 ‘다녀왔습니다’ 할 때면 종알종알 내 하루를 묻던 엄마가 그리웠다.
낡은 트럭에서 나누던 이야기들이 참으로 귀한 것이었다.
나누는 말의 마디가 짧아지기 시작한 때에 나는 그렇게 철이 들었다.
고등학교에 입학하던 해, 부모님은 까만 승용차 한 대를 샀다.
그 차를 나에게 소개하던 엄마의 신이 난 목소리가 아직도 선명하다.
이제 괜찮아? 우리 딸 보러 가도 괜찮아?'하고 묻는 듯한 탓에 목이 메었다.
매끈하게 빛나던 그 차에 올려진 부모님의 거칠고 투박한 손은 모두 나 때문이었다.
아직 꽃이 피지 않은 서늘한 봄에 열린 내 입학식에 엄마와 아빠는 그 차를 타고 왔다.
옷장 깊은 곳에 넣어뒀던 가장 멀끔한 옷을 입고 샛노란 프리지어 꽃다발을 안고 왔다.
“딸, 입학 축하해. 엄마 괜찮아? 머리가 좀 이상한가?”
분홍 머리핀을 꼽고 꽃처럼 웃음 지으며 연신 묻던 우리 엄마가 게서 가장 예뻤다.
“입학 축하한다.”
넥타이를 맨 아빠가 나를 품에 안고 굳은살이 다 박인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를 키운 그 밭의 흔적이었다.
내가 쇠쟁기로 헤집어 놓은 그 밭이 결국 다시 나를 보듬었다.
영원히 나를 키울 밭이었다.
엄마와 아빠는 하교 시간에 년 내내 먼저 와 나를 기다렸다.
자율학습이 끝나는 밤 0시에 단 한 번도 나는 부모님을 기다린 적이 없다.
우리의 까만 승용차에선 항상 비누 냄새가 났고, 흙 묻은 장화는 더 이상 거기에 없었다.
나는 나중에야 그 낡은 트럭이 내가 태어나던 해에 산 것임을 알았다.
새하얀 트럭을 사던 때에 부모님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들의 아이가 자라나는 모든 순간을 함께할 트럭을 사던 때에 얼마나 설레었을까.
내 기억 속 트럭은 어석더석 잘라 붙인 콜라주 사진이었지만 그들에게 그 트럭은 길고 애틋한 한 장의 파노라마였다.
녹음이 세상을 덮고 그 사이로 향기 좋은 바람이 불어오면 어느 농부의 딸은 마음 한구석이 시려온다.
벚꽃이 만개해 바람에 날리면 엄마의 흙 묻은 파란 장화와 낡은 트럭을 생각한다.
제멋대로 헤집어 놓은 밭에 봄물이 들어 그 흔적이 아스라이 잊히기를, 명지바람 불어 기분 좋은 봄 내음만 남기를.
그것이 영원한 내 봄날의 바람이다.
[출처 : 오유-유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