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t's Go · JAXSON GAMBLE
일제가 저렇게 하도록 길 터준 관찰사 박중양만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고종이 하지 말랬는데 기어이 대구 읍성 헐어줌. 저 돌 영원히 닳아 없어질 때까지 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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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중양 이놈은 해방되고도 지가 잘했다고 큰소리치고.. 반민특위가 무너지면서 아무런 처벌도 받지않고 천수하다 죽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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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eethache 지옥가서 곱게 있지는 않았음 좋겠네
박중양

성균관 대학교강사,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김일수는“박중양은 아마도순종의 방문을 통해한국통감부내 자신의 영향력을 대구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었을 것이다. 대구 출신이 아니었던 박중양이대구에서 세력을 키울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정치적 행동 때문이었을 것”이라고 보았다.
김일수박사(성균관대학교강사, 전 친일반민족행위진상위원회 위원)는 “당시 왕을 알현하기도 힘든 상황에서 왕이 직접대구를 찾았다는 것은 박중양이 일제로부터 무한대의 신임을 받고 있음을대구사회에 알리는 계기가 됐다”며 “아마도 박중양은일본이 조선을 본격적으로 식민지화 할 경우조선의 정치적 대안세력이 자신임을 알리고 싶었을 것”이라고 보았다.일설에는경상북도감영에서달성공원까지 길을순종이 오기 전 날 박중양이 만들었다고 한다.1909년5월대구협성학교를 폐하려 하였으나 학부에서 불허하였다. 대신 그는협성학교를 제2공립보통학교로 변경하려 하였으나 역시학부가 거절하였다.
1914년3월에는 자신의 소유 달성공원 일대를 1905년4월에 건립된 대구신사의 이전 부지로 기부하기도 했다. 대구신사는 지금의 코끼리 사육사가 있는 장소 근처에 건축되었으나, 부제가 실시되기 직전인 1914년 3월에 달성공원 중앙부 서단[주 3]으로 이전, 신축되었다. 건축위원장은 부이사관인 오까모또가, 회계는 이와세가, 그리고 신사 부지를 제공한 박중양 등 세 사람에 의해 대구신사가 건립을 보게 되었다고 『대구일반』은 기록하고 있다.
출처 : Wikipedia
개상여르 제국주의
[출처 : 오유-유머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