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아빠였다.

유머

나는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아빠였다.

오호유우 0 26,661 02.10 16:33
 
 
 
 
 
나는 딸 하나를 둔 평범한 아빠였다.
시작은
우연한 실수에서 비롯됐다. 친구에게 건다는 것이 그만 엉뚱한 번호를 눌렀다.
어쩌면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여보세요”
“아빠?”
아마 내 딸 현정이와 비슷한 또래로 초등학교 저학년 쯤 되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였다.
“넌 아빠 번호도 모르니? 저장이라도 하지.”
괜히 내 딸 같아서 핀잔을 준 건데..
“아빠 바보. 나 눈 안 보이잖아.”
순간 당황했다.
‘아! 장애있는 아이구나’
“엄만 요 앞 슈퍼가서 대신 받은 거야. 아빠. 언제 올거야?”
너무 반기는 말투에 잘못 걸었다고 하기가 미안해서..
"아빠가 요즘 바빠서 그래.”
대충 얼버무리고 끊으려 했다.
“그래도 며칠씩 안 들어오면 어떡해? 엄마는 베개싸움 안 해준단 말야.”
“미안. 아빠가 바빠서 그래. 일 마치면 들어갈게.”
“알았어. 그럼 오늘은 꼭 와 끊어.”
막상 전화를 끊고 나니 걱정됐다. 아이가 실망할까봐 그랬지만 결과적으로는 거짓말한 거니까.
큰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온종일 마음이 뒤숭숭했다.
그날 저녁, 전화가 울린다.
아까 잘못 걸었던 그 번호다. 왠지 받기 싫었지만 한참을 망설이다가 받았다.
“여보세요?”
침묵이 흐른다.
“여보세요”
다시 말을 하니 왠 낯선 여자의 음성이 흘러나왔다.
“죄, 죄송합니다. 아이가 아빠한테서
전화가 왔대서요.”
“아! 네. 낮에 제가 전화를 잘못 걸었는데 아이가 오해한 거 같아요.”
“혹시 제 딸한테 아빠라고 하셨나요? 아까부터 아빠가 오늘 온다며 기다리고 있어서요.”
“죄송합니다 엉겁결에..”
“아니에요. 사실은 아이 아빠가 한달 전에 교통사고로 갑자기 돌아가셨어요. 우리 딸이 날 때부터 눈이 안 보여서 아빠가 더 곁에서 보살피다보니 아빠에 대한 정이 유별나네요.”
“아? 네! 괜히 제가..”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제 딸한테 아빠가 바빠서 오늘도 못 가니 기다리지 말라고 말씀 좀 해주실 수 있나요?“
“그냥 그렇게만 하면 될까요?”
“네 부탁 좀 드릴게요. 잠도 안 자고 기다리는 게 안쓰러워서요. 죄송합니다. 참! 아이 이름은 지연이에요. 유지연. 5분 뒤에 전화 부탁 좀 드릴게요."
왠지 모를 책임감까지 느껴졌다. 5분 뒤에 전화를 걸자 아이가 받는다.
“여보세요.”
“어 아빠야. 지연아. 뭐해?”
“아빠 왜 안와? 아까부터 기다리는데..”
“응! 아빠가 일이 생겨서 오늘도 가기 힘들 거 같아.”
“아이.. 얼마나 더 기다려? 아빤 나보다 일이 그렇게 좋아?”
아이가 갑자기 울기에 엉겁곁에..
“미안 두 밤만 자고 갈게.”
당황해서 또 거짓말을 해 버렸다.
“진짜지? 꼭이다. 두 밤 자면 꼭 와야 해. 헤헤..”
잠시 뒤에 아이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는데 너무 고맙단다. 아이한테 무작정 못 간다고 할 수 없어 이틀 뒤에나 간다고 했다니까 알아서 할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안심시킨다.
그리고 이틀 뒤..
이젠 낯설지 않은 그 번호로 전화가 왔다.
“아빠!”
울먹이는 지연이 목소리..
“아빠! 엄마가 아빠 죽었대. 엄마가 아빠 이제 다시 못 온대. 아니지? 이렇게 전화도 되는데 아빠. 빨리 와 엄마 미워. 거짓말이나 하고.. 혹시 엄마랑 싸운 거야? 그래서 안 오는 거야? 그래도 지연이는 보러 와야지. 아빠. 사랑해. 얼른 와..”
가슴이 먹먹하고 울컥해서 아무 말도 못한 채 한참을 있을 수밖에 없었다.
“지연아 엄마 좀 바꿔 줄래?”
전화를 받아 든 지연이 엄마는 미안하다며 애가 하도 막무가내라 사실대로 말하고 전화걸지 말랬는데도 저런단다. 그 말에 딸을 둔 아빠로써 마음이 너무 안 좋아서 제안을 했다.
“저기.. 어머니. 제가 지연이 좀 더 클 때까지
이렇게 통화라도 하면 안 될까요?”
“네? 그럼 안 되죠. 언제까지 속일 수도 없잖아요.”
“지연이 몇 살인가요?”
“이제 초등학교 1학년이에요.”
“아! 네 저도 딸이 하나 있는데 3학년이거든요.
1학년이면 아직 어리고 장애까지 있어서 충격이 더 클 수도 있을테니까. 제가 1년 쯤이라도 통화하고 사실대로 얘기하면 안 될까요?"
“네? 그게 쉬운 일이 아닐텐데..”
“제 딸을 보니까 1학년, 2학년, 3학년, 한해 한해가 다르더라고요. 좀 더 크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을 거 같아요."
오히려 내가 지연이 엄마한테 더 부탁했다. 그땐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지연이에게 뭐라도 해주고 싶었다. 그리고 그 뒤부터 자주는 아니지만 보름에 한번 쯤 지연이와 통화했다.
“아빠. 외국 어디에 있어?”
“사우디아라비아.”
“거기서 뭐하는데?”
“어? 빌딩짓는 건설현장에서 일하고 있지.”
“아..! 거긴 어떻게 생겼어?”
어릴 적 아버지께서 사우디아라비아에 건설노동자로 몇 해 다녀오신 적이 있어서 그때 들은 기억들을 하나 둘, 떠올려 지연이에게 말해줬다.
그렇게 한 게 1년이 되고 2년이 되고..
내 딸 현정이 선물살 때 지연이 것도 꼭 챙겨서 택배로 보냈고..
그렇게 지연이의 가짜 아빠 노릇을 전화로 이어나갔다.
“당신 어린애랑 원조교제 같은 거 하는 거 아냐?”
한때 아내에게 이런 오해를 받을 만큼 자주 통화도 했다. 현정이는 커 가면서..
“아빠 과자 사와."
"아이스크림 피자."
"아빠 용돈 좀..”
늘 그런 식인데 지연이는..
“아빠. 하늘은 동그라미야? 네모야? 돼지는 얼마나 뚱뚱해? 기차는 얼마나 길어?”
등등..
사물의 모양에 대한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그럴 때면 안쓰러워 더 자상하게 설명하곤 했지만 가끔 잘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 들기도 했다.
3년쯤 지난 어느날..
지연이에게 전화가 왔다.
“어! 지연아. 왜?”
“저기.. 나 사실은 작년부터 알았어. 아빠 아니란 거..”
뭐라 할 말이 없었다.
“엄마랑 삼촌이 얘기하는 거 들었어. 진짜로 아빠가 하늘나라 간 거..”
“그, 그래 미안.. 사실대로 말하면 전화통화 못할까봐 그랬어.”
“근데 선생님이 4학년이면 고학년이래. 이제부터 더 의젓해야 된댔거든..”
“지연아. 근데 진짜 아빠는 아니지만 좋은 동무처럼 통화하면 안 될까? 난 그러고 싶은데 어때?"
“진짜? 진짜로 그래도 돼?”
“그럼 당연하지.”
그 뒤로도 우린 줄곧 통화했다. 다만 이제 아빠라고는 안 한다. 그렇다고 아저씨도 아니고
그냥 별다른 호칭없이 이야기하게 됐는데.. 솔직히 많이 섭섭했다. 그래도 늘 아빠로 불리다가 한순간에 그렇게 되니까. 그렇다고 아빠라고 부르라고 하기도 뭐하고..
시간이 흘러 지연이가 맹학교를 졸업하는 날이 됐다. 전화로만 축하한다고 하기엔 너무나 아쉬웠다. 몇 해 동안 통화하며 쌓은 정이 있는데 그날만은 꼭 가서 축하해주고 싶었다. 목욕도 가고 가장 좋은 양복도 차려 입고 한껏 치장했다. 비록 지연이가 보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처음 만나는 날인데 그 옛날 아내와 선보러 갈 때보다 더 신경쓴 거 같다.
꽃을 사들고 들어간 졸업식장에서 지연이 엄마를 처음 만났다. 너무 고맙다며 인사를 몇 번씩 하시는데 왠지 쑥스러웠다.
잠시 후..
졸업장을 받아든 아이들이 하나 둘 교실에서 나오는데 단박에 지연이를 알아볼 수 있었다. 신기하게도 그 많은 아이들 중에 유독 지연이만 눈에 들어왔으니까..
“지연아!”
지연이 엄마가 딸을 부른다. 그러자 활짝 웃으며 다가온다.
“지연아. 누가 너 찾아오셨어 맞춰봐?”
지연이가 누구?하며 의아해 할 때 꽃다발을 안겨주면서..
“지연아. 축하해.”
그러자 갑자기 지연이가 큰소리로 울음을 터뜨렸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지연이 엄마도 나도 어쩔 줄 모르는데 지연이가 손을 더듬어 나를 꼭 안았다.
“아빠! 이렇게 와줘서 너무.. 너무 고마워.”
순간 내 눈에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난 이미 오래 전부터 너무나 착하고 이쁜 딸을 둘이나 둔..
행복한 아빠였음을 그날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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