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첫 국가 동양고전으로 다시 찾는 환웅 환인 밝족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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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첫 국가 동양고전으로 다시 찾는 환웅 환인 밝족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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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백강의 한국고대사] 한국의 첫 국가 환국 (1)




환인·환웅은 인간의 역사…삼국유사 주석은 오류다
삼국유사 첫 등장 이전부터 환웅·환인 기록 전해내려져
국사 역임한 승려 출신 일연 古記 인용 불교적 주석 달아
'석제환인'→'제석환인' 해석…우리 상고사 신화로 만들어

 

환인 환웅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제왕운기, 세종실록 지리지 등 우리나라의 여러 정통 사서에 등장하지만 이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다음 내용이다.

"'고기古記'에 말하기를, '옛날에 환인桓因 제석帝釋을 말한다 이 있었는데 여러 아들 중의 한 아들인 환웅桓雄이 천하에 자주 뜻을 두고 인간 세상을 탐하여 구하였다. 아버지가 아들의 뜻을 알고 삼위三危 태백太白을 내려다보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할만 하였다. 이에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주며 가서 다스리게 하였다.'라고 하였다.(古記云 昔有桓因 謂帝釋也 庻子桓雄 數意天下 貪求人世 父知子意 下視三危太伯 可以弘益人間 乃授天符印三箇 遣徃理之)"

17681796160377.png북한 안악 삼성사의 환웅 화상

환인 환웅은 일연의 삼국유사 고조선 조항에 처음 나오지만, 환인과 환웅의 이야기는 일연이 살았던 고려시대 훨씬 이전부터 이미 전해져 내려온 것임을 알수 있다. 이는 일연이 스스로 한 말이 아니라 '고기古記' 즉 옛 기록을 인용하여 환인, 환웅을 설명하고 있기 때문이다.

17681796164318.png삼국유사의 환웅관련기사.

◆삼국유사의 환인에 대한 해석 '제석천'은 오류이다

일연의 삼국유사는 옛 기록인 '고기'를 그대로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환인이라는 명사 밑에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 라는 주석을 달았다. 즉 삼국유사에는 환인에 대해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라는 본래 '고기'에 없는 일연의 자의적인 말이 추가되어 있다.

'제석'이란 불교에서 사용하는 용어로서 '석제환인釋帝桓因'의 줄인 말이다. 이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가 된다.

범어에서 석가釋迦는 성姓으로서 능能 즉 능력을 의미하고 제환提桓은 천天 즉 하늘을 뜻하며 인다라因陀羅는 제왕 즉 천제天帝의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는 우리말로 풀이하면 '유능한 하늘의 제왕'이란 뜻이 된다.

석가제환인다라釋迦提桓因陀羅의 의미를 한자로 요약하면 능천제能天帝, 또는 석천제釋天帝가 되는데 이를 제석帝釋, 또는 제석천帝釋天이라고 말하는 것은, 범어를 한자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한자의 어순에 부합하도록 표현하다보니 범어의 원래 어순과는 달라지게 된 것이다.

17681796168793.jpg도리천의 왕으로 불교의 수호신인 제석천을 묘사한 불화, 대구 동화사 소장

불교에서 제석이란 호법신으로서 수미산 꼭대기 도리천에서 사천왕과 삼십이천을 통솔하면서 불법에 귀의하는 사람을 보호하고 아수라의 군대를 정벌한다는 하늘의 임금을 가리킨다.

불경에서는 석가모니가 태어날 때 제석천이 앞에서 길을 인도하였고 성도한 뒤에는 제석천이 부처의 수호신이 되었으며 부처가 도리천에 올라가서 어머니를 위해 설법할 때는 제석천이 부처의 시종侍從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일연은 고려때 국사를 역임한 승려이다. 그러므로 불교의 영향을 받아서 삼국유사를 저술할 때 우리민족의 시조설화가 담긴 '고기'를 인용하면서 거기에 적힌 환인桓因이 불교에서 말하는 '석제환인釋帝桓因'과 용어가 유사하자 이를 불교의 제석환인 즉 제석천으로 주석한 것이다. 그러나 인도의 불경에 나오는 부처의 시봉을 들던 하늘의 제왕 제석환인을 우리민족의 시조 환인과 동의어로 해석한 것은 어디까지나 불교적 관점일 뿐이며 우리 상고사의 오류가 사실은 여기서부터 발단이 되었다고 본다.

◆삼국유사가 우리 상고사와 관련하여 범하고 있는 다른 오류들

일제 식민사학이 환인, 환웅, 단군을 실재 역사가 아닌 신화로 해석할 수 있는 근거를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라는 삼국유사의 환인에 대한 주석이 제공해주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삼국유사의 '고기' 주석에서는 이뿐만 아니라 다른 오류들도 발견된다. 예컨대 '고기'에서 "환웅이 무리 삼천을 이끌고 태백산 정상에 내려왔다"고 했는데 삼국유사는 "태백산은 바로 지금의 묘향산이다(卽太伯今妙香山)"라는 주석을 덧붙이고 있다.

환웅이 내려와 신시를 개국하였다는 태백산에 대하여는 여러가지 설이 존재한다. 최남선은 백두산, 심백강은 러시아 바이칼호 부근의 사얀산으로 보았다. 사얀은 여진어로서 한자로는 태백太白의 뜻이다. 중국의 태산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묘향산은 북한의 평안북도와 평안남도에 걸쳐 있는 산인데 묘향은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용어로서 불교와 관련이 깊은 산이다. 일연이 승려라서 환인을 불교의 제석천으로 해석하고 환웅이 내려온 태백산도 불교와 관련이 깊은 묘향산으로 비정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묘향산에서 상고시대에 인류가 활동한 암각화 같은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또한 묘향산이 우리민족의 발상지라는 문헌적 근거도 찾아볼 수 없다. 그런데 환웅이 개국한 태백산을 북한의 묘향산으로 비정한 것은 한민족의 활동무대를 한반도 안으로 축소시키는 데 결정적인 구실을 제공했다.

삼국유사 고조선조에서 무엇보다 실소를 금할수 없는 부분은 "고구려가 본래는 고죽국이었다(高麗本孤竹國)"라는 내용을 "지금의 해주이다(今海州)"라고 주석한 것이다. 북한의 해주 석담은 율곡 이이가 제자를 양성했던 곳으로 유명하며 그의 저서 석담일기도 여기서 명칭이 유래했다.

고죽국은 백이 숙제의 나라로서 오늘날의 중국 하북성 진황도시 노룡현 부근에 있었는데 이를 황해도 해주로 비정한 것은 삼국유사가 과연 일연의 저작이 맞는지 의아스러울 정도이다.

◆삼국유사의 오류는 저자 일연의 잘못인가

다만 우리가 여기서 유념할 것은 삼국유사 최초의 판본이 언제 간행되었으며 어떻게 전해졌는지 분명치 않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자료들을 검토해볼 때 고려시대에 일연의 제자들에 의해 처음 간행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나 고려 때의 판각본은 남아 있지 않고 현재 전하는 것으로 가장 오래된 판본은 한양조선 중종 7년(1512년) 그러니까 불과 500년 전 경주 부윤 이계복李繼福이 주관해서 간행한 정덕본正德本이 전할 뿐이다.

17681796172118.jpg일연 스님 표준 영정.

따라서 현재 전하는 삼국유사의 환인이라는 명사 밑에 "제석을 말한다(謂帝釋也)"라는 주석을 비롯해서 여러 잘못된 해석들이 덧붙여져 있는 것이, 일연의 작품이 아니라 제자들에 의해서 또는 뒤에 사대주의가 판을 치던 한양조선에서 판각할 때 추가된 내용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으나 지금으로선 확인할 길이 없다.

◆땅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역사를 하늘나라의 이야기로 바꿔버린 "제석천"

삼국유사 이외에 고려때 이승휴의 제왕운기나, 세종실록 지리지에 실려 있는 단군고기 등의 환인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여기서는 환인을 일연처럼 불교의 제석천으로 해석하고 있지 않다.

세종실록의 단군고기에서는 환인을 가리켜 "상제 환인上帝桓因"이라고 하였다. 상제와 제석천은 엄연히 위상이 다르다. 제석은 부처님을 시봉하는 존재로서 부처님의 하위계급에 해당하지만 상제는 우주만물의 조화를 담당하는 주재자로서 부처님보다 훨씬 상위적 개념이다. 성경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하나님과 같은 존재이다.

유가계통의 사서인 제왕운기나 세종실록에서 환인을 하늘의 상제로 해석하게 된 것은 삼국유사가 먼저 이를 천상의 제왕 중의 하나인 제석천으로 해석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17681796175361.jpg중국 하북성 동남쪽에 있던 고죽국.

시기적으로 삼국유사보다 후기에 나온 유가 사서들은 환인에 대해 제석천으로 해석한 삼국유사의 영향을 받았으며 불가의 제석천을 유가의 상제로 대체한 것이라 할수 있다.

고려시대의 옛 기록에서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홍익인간 이념으로 신선의 나라 신시神市를 개국하여 인간세상을 다스린 내용을 말하였는데 일연의 삼국유사에서 환인을 불교의 제석천 하나님으로 해석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땅에서 이루어진 인간의 역사가 하늘나라의 이야기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심백강의 한국고대사] 한국의 첫 국가 환국(桓國) (2)




"환국 창립 이래 5천년 역사" 임시정부 공식 입장
상고사 쌍벽은 유가·불가…최치원 난랑비 '仙史' 기록
세조실록엔 구체적 책명…숙종까지만 전해진 사서
환단고기, 삼성기전 실려…"처음에 환인 천산에 거주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
이후 배달국·조선국 역사

 

우리나라에는 예로부터 세 가지 계통의 사서가 있었다고 본다. 불가계통의 사서, 유가계통의 사서, 선가계통의 사서가 그것이다. 불가계통의 사서는 삼국유사로 대표되고 유가계통의 사서는 삼국사기로 대표되며 현재는 이 양대 사서가 한국상고사의 쌍벽을 이루는 자료다.

◆불가사서, 유가사서 이외에 선가사서가 있었다

그러면 선가 계통의 사서란 무엇이며 그것이 전해왔다는 근거는 어떻게 증명할 수 있는가. 최치원의 난랑비(鸞郎碑) 서문에 "우리나라에는 유, 불,도 삼교를 포함한 밝달도(風流道)가 있었고 그 교가 설립된 자세한 내용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다."라고 했다.

17681796177729.jpg선가의 역사서 선사에 대해 언급한 최치원.

여기서 최치원이 언급한 '선사'란,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평양을 가리켜 "선인 왕검이 거주하던 곳이다(仙人王儉之宅)"라고 말한 것에 비추어보면 환인, 환웅, 단군왕검을 비롯한 환국, 밝조선의 역대 선인(仙人)들의 발자취를 기록한 책이 아닐까 여겨진다.

최치원이 난랑비 서문에서 인용한 '선사'가 바로 선가의 역사서였고 그러한 선가계통의 서적들은 발해조선을 거쳐 고구려, 백제, 신라를 지나 그 일부가 한양조선 초기까지 전해졌다.

17681796180848.jpg삼성기, 조대기 등 선가계통의 서적을 수거하라고 팔도의 관찰사에게 하달한 공문, 세조실록에 나온다.

세조는 3년(1457) 5월 26일 팔도의 관찰사에게 이런 지시를 하달했다. "고조선비사古朝鮮秘詞, 조대기朝代記, 표훈삼성밀기表訓三聖密記, 지공기誌公記, 안함노安含老 원동중元董仲 삼성기三聖記···등의 문서는 개인 집에 간직해서는 안된다. 만약 간직한 사람이 있으면 진상하도록 하고, 그들이 원하는 서책을 가지고 되돌려줄 것이다. 그것을 관청 민간 및 사찰에 널리 알리라."

세조실록에 등장하는 이러한 책들은 지금 실재하지 않아서 정확한 내용은 파악할 길이 없지만 책 이름에서 유가, 불가와 다른 선가계통의 책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양조선 숙종때 까지 전해진 선가의 역사서 진역유기(震域遺記)

17681796184299.png규원사화 단군기, 일연과 선가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 보이다.

규원사화(揆園史話). 이 책은 지금으로부터 약 350년 전인 1675년 숙종때 규원초당의 주인 북애노인이 저술한 책이다. 북애는 이 책의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일찍이 국사를 써보고 싶은 마음은 있었으나 본디 그만한 재능이 없었다.···천만 다행으로 두메산골에서 청평淸平이 저술한 진역유기震域遺記를 얻었는데 그 가운데 삼국시대 이전의 옛 역사가 담겨져 있었다. ···이것을 바탕으로 하고 다시 중국역사의 여러 문헌에 나오는 내용들을 발췌하여 덧붙여 사화史話를 저술하게 되었다."

삼국시대 이전의 기록이 담긴 진역유기라는 책을 어느 두메산골에서 구할 수 있었던 것이 북애가 규원사화를 저술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북애는 규원사화의 단군기 편에서 진역유기에 대해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청평산인 이명李茗은 고려때 사람인데 그가 쓴 책에 진역유기 3권이 있었다. 이 책은 조대기朝代記를 인용하여 우리나라의 옛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이다. 일연이 지은 삼국유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 그 중에는 선가仙家의 말이 많다."

북애에 따르면 진역유기는 고려 때 사람 이명이 조대기라는 책을 참고하여 우리나라의 고대사를 정리한 책이다. 특히 북애가 "선가의 말이 많고 삼국유사와는 큰 차이가 있다"라고 언급한 것을 본다면 진역유기는 우리 고유의 선가계통의 역사서임을 미루어 짐작하기에 어렵지 않다.

북애는 진역유기가 그 내용 면에서 불교계통의 역사서들과 어떻게 다른지 다음과 같이 말을 잇는다. "우리 국사는 여러번 전쟁을 겪으면서 없어지고 이제 겨우 남아 있는 것은 단지 도가와 승려들이 적어서 전한 것 뿐인데 다행히 바위 동굴에서 보존해왔다. 도가는 이미 단검 신인(檀儉神人)이 세운 원류를 계승했고 또 문헌에 남아 있는 맥을 이었으니 우리 역사를 논한 것이 승려들이 써놓은 견강부회한 것보다는 훨씬 낫다."

북애의 이 기록은 두 가지 점에서 큰 의미를 시사한다. 첫째는 내용 면에서 승려들이 지은 불가계통의 역사책과 크게 다른 선가계통의 역사서가 우리나라에 실재했었다는 것이고 둘째는 진역유기와 같은 선가계통의 역사서가 지금으로부터 350년 전인 숙종때 까지도 두메산골에 숨겨져 있어 북애가 그것을 참고할 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

◆선가사서 삼성기전(三聖紀全)은 환인 환웅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

지금은 고려때 이명이 진역유기를 저술할때 참고했던 조대기는 물론 숙종때 북애가 규원사화를 쓰는데 참고했다는 진역유기마저도 전해지지 않는다.

17681796188257.jpg삼국사기의 선사 관련 기록.

그러나 이명이 참고했던 조대기를 비롯 고조선비사, 삼성기 등 선가의 사서가 한양조선 세조때 까지도 전해진 방증을 세조실록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환단고기에는 안함로 원동중이 쓴 삼성기전이 들어 있다. 지금 환단고기에 실려 있는 삼성기전이 원래의 모습은 아니더라도 세조실록의 수거 목록에 등장하는 안함로 원동중이 쓴 삼성기와 동일한 책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삼성기전은 세조실록에 나오는 삼성기와 책명과 저자가 동일하고 책의 내용 또한 환인, 환웅, 단군 삼성인을 다루고 있다. 책 내용이 삼성인의 기록이고 저자가 안함로, 원동중이며 책명이 삼성기이다. 삼박자가 모두 맞아떨어진다.

그렇다면 선가계통의 사서로 여겨지는 삼성기전에서는 환인, 환국을 어떻게 기술하고 있는가. 천상세계의 하나님이 아닌 인간세계의 환인씨로 보았고 또 그가 환국을 건국한 것으로 해석하여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처음에 환인이 천산에 거주하셨다(初桓因 居于天山)" "옛적에 환국이 있었다(昔有桓國)" "우리 환국이 건국의 역사가 가장 오래되었다.(吾桓建國最古)"

삼성기전은 인류역사상 가장 먼저 건국된 나라가 우리 환국이라 말했고 환인은 천상의 하나님이 아니라 환국의 국왕인 환인씨라고 하였다. 중국 역사에는 상고시대에 태호복희씨, 염제신농씨, 소호금천씨, 황제헌원씨 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삼성기전은 환인은 환인씨라는 복희씨 이전에 있었던 씨족이고 환국은 환인씨라는 씨족이 세계에서 최초로 건립한 나라였다고 본 것이다.

삼성기전은 환국, 배달국, 조선국, 부여국, 동명국, 고구려국으로 건국의 역사가 이어졌다고 하였다. 단군에 의해서 건국된 조선이 우리민족의 첫 국가가 아니라 환인씨가 개국한 환국이 우리민족의 첫 국가이며 이것이 세계 최초의 나라라는 것이다.

◆한국의 첫 국가는 고조선이 아니라 환국이다

광복후 식민사관을 물려받은 일본 총독부 조선사편수회 출신들이 한국사학계를 장악하는 바람에 고조선마저도 부정되거나 신화로 취급을 당했다. 그러나 우리의 첫 국가는 고조선이 아니라 환국이라는 것은 민족사학의 보편적인 인식이었다.

"우리 민족은 처음 환국이 창립된 이래 단군, 부여, 삼한, 삼국, 고려, 조선을 거쳐 대한민국까지 5천년에 이르렀다." 1942년 임시정부 제23주년 3,1절 선언문 서두에 나오는 말이다.

1936년 8월 29일 한국독립당은 제26주년 국치일(國恥日)에 발표한 선언문에서 "환국에서 삼한이 끝나기까지 무릇 3천여 년, 삼국(신라, 고구려 , 백제)에서 신라 말까지 무릇 1천년, 왕씨 고려로부터 이씨조선까지 각각 5백여년 지속되어 모두 5천년이다."라고 하였다.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집에 실린 이런 기록들에 의하면 한국의 첫 국가를 고조선이 아닌 환국이라고 인식한 것은 민족사학의 관점일 뿐 아니라 임시정부의 공식 입장이기도 하였던 것이다. 



[심백강의 한국고대사] 동양고전으로 다시 찾는 환국 밝족 역사 (1)




시경 속 '현왕 환발'이 환국·밝족 이라면 한족 역사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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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에 환인, 환웅 이야기가 최초로 나온다. 이 이야기가 언제부터 전해왔는지 정확한 내막은 알 길이 없지만 고려 때 사람 일연이 '고기古記'를 인용하여 '삼국유사'에 기재한 것을 보면 고려 이전부터 이런 내용이 전해져온 것은 확실하다고 하겠다.
일본의 식민사학자들은 '삼국유사'의 고조선조에 담긴 환인, 환웅, 단군의 설화를 신화 취급하여 실재 역사로서 인정하지 않았고 현재 한국의 강단 사학은 일제 식민사학의 유산을 계승, 고조선의 단군을 신화, 환인 환웅을 선사시대로 간주하여 한국역사에서 배제하고 있다.

◆동양고전 '시경'과 한국 상고사 환국 밝족
'시경'은 동아시아 최고의 문학 총서이다. 여기에는 중국 상나라 시대부터 춘추시대 중엽까지 그러니까 서기 전 16세기부터 서기 전 6세기까지의 시가 총 311편이 수록되어 있다. 춘추시대에 공자가 편찬한 것으로 전해진다.

17681796194457.jpg시경

'이소경離騷經'이 중국의 남방 문학을 상징한다면 '시경'은 북방 문학을 상징하는 대표적 고전이다. 동양에서 역사가 독립된 지위를 가지게 된 것은 사마천이 '사기'를 저술한 이후이며 그 이전에는 문학, 역사, 철학이 뚜렷이 나뉘지 않았다. 따라서 '시경'은 북방의 문학경전인 동시에 3,500년 전 북방의 역사도 살필 수 있는 고대사자료이기도 한 것이다.
한국 상고사의 뿌리에 해당하는 환국, 밝조선은 '삼국유사'와 같은 우리 사서에는 나오지만, 중국문헌에 이를 뒷받침할만한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서 그동안 환국은 사전사로, 단군조선은 신화로 취급을 당해 왔다.

'시경'은 중국 선진시대의 문헌이자 동양의 대표적 경전 중의 하나인 만큼 '시경'에서 그동안 베일에 가려졌던 한국 상고사의 환국과 밝족에 대한 정체가 밝혀질 수만 있다면 한국 상고사는 '시경'이라는 동양의 고전을 통해서 새롭게 증명되는 전기를 맞게 될 것이다.

◆환인, 환웅, 환국과 '시경'의 "현왕 환발玄王桓發"

'시경'에 수록된 시가는 내용상에서 풍風, 아雅, 송頌으로 분류되는데 '풍'은 주周나라 시대 각 지방의 가요이고 '아'는 주나라 시대 아악雅樂 즉 정악 가사이다.
'시경' 가운데 '송'은 주송周頌, 노송魯頌, 상송商頌 세 나라의 송이 실려 있는데 송이란 칭송한다는 의미로서 주나라, 노나라, 상나라에서 후손들이 자기 조상을 제사지낼 때 찬송하며 연주하던 곡의 가사이다.

17681796197064.jpg시경의 현왕환발에 대한 주희의 주석.

상나라의 상송은 열조, 현조, 장발 등 모두 5편의 송이 '시경'에 실려 있다. 장발편長發篇은 상나라 후손들이 국조 탕 임금과 또 그 민족의 시조를 제사지내면서 그들의 업적과 공적을 찬미하고자 부른 시가의 명칭이다.
'장발長發'이란 제목이 붙여진 상나라 송가는 동이족, 특히 우리 밝족과 관련하여 시선을 끈다. 상고시대 동이족 가운데 장이長夷와 발족發族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장발"이란 두 글자도 한국의 상고사적 측면에서 바라보면 범연히 보아넘길 단어가 아니지만 상나라의 시조 설화 가운데 등장하는 "현왕 환발玄王桓發"이란 네 글자는 특히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여기 "환발"에서 한국 상고시대의 환국과 밝족의 역사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동이족의 역사에 조예가 부족했던 주희의 "현왕 환발"에 대한 잘못된 해석

'시경'의 "현왕 환발玄王桓發"에 보이는 환桓은 '삼국유사'에 나오는 우리 민족의 환인桓因, 환웅桓雄의 '환'자와 글자가 같고 발發은 '관자管子'에 나오는 발조선發朝鮮의 '발' 자와 동일하다. 그런데 주희는 환발桓發에 대한 주석을 하면서 무치武治 즉 "무력으로 다스린다"는 의미라고 풀이했다.

17681796200138.jpg삼국유사에 인용된 고기에 실려있는 환인·환웅 기록.

"환발"은 한국 상고사의 뿌리를 상징하는 두 단어인데 동이사와 한국사에 조예가 부족했던 주희로서는 "환발" 두 글자를 보면서 환국과 발조선을 연상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현재 한국에서는 '환단고기'의 영향으로 말미암아 "환단"으로 널리 불리고 있지만 "환단"과 "환발"은 실상 글자만 다를 뿐 한국사의 시원 "환밝"을 지칭한다는 점에서는 같은 것이다.

주희는 또한 상송 장발편의 주석을 내면서 "장발長發"을 "길이 발현된다"라는 뜻으로 풀이했다. 역사와는 전혀 상관없는 형용사적인 의미로 해석한 것이다.
그리고 "현왕 환발"에서의 현왕은 상商나라의 설契을 가리킨다고 말했다. 설은 순임금의 신하로서 사도司徒의 직책에 있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교육부 장관직에 종사했던 인물이다. 그런데 그에게 어떻게 왕의 칭호를 붙여서 현왕으로 지칭할 수가 있겠는가.

17681796203317.jpg주희

그래서 주희는 "설을 왕이라고 한 것은 추존한 것이다(王者追尊之號)"라고 부연 설명을 했는데 그것도 잘못이다. 후손들이 자기의 조상을 왕으로 추존하는 제도는 주周나라에서 시작되었고 상나라에서는 이런 제도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설을 현왕으로 추존할 수가 있었겠는가. 주희가 "환발"을 "무력으로 다스린다"라고 해석한 것도 견강부회지만 현왕을 상나라의 설이라는 인물로 비정한 것도 논리적 모순이다.

"현왕 환발玄王桓發"과 관련해서 또 하나 주목할 대목은 전국시대에 노魯나라 모형毛亨과 조趙나라 모장毛萇이 편집 주석한 '모시毛詩', 즉 현재 유행하는 '시경'에는 "현왕 환발玄王桓撥"로 되어 있지만 한나라 초기 연燕나라 사람 한영韓嬰이 전수한 '시경'인 '한시韓詩'에는 "현왕 환발玄王桓發"로 되어 있고 "발發은 명明이다"라고 주석한 점이다.

한영의 '한시'가 발撥을 발發로 표기하고 이를 밝을 명明자의 뜻으로 해석한 것은 동이사적 관점에서 볼 때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다. 우리는 그동안 '관자'에 나오는 발조선發朝鮮의 발이 광명을 뜻하는 우리말의 한자표기라고 인식하면서도 그것의 근거를 찾기는 쉽지 않았는데 이는 곧 발조선의 발이 광명 즉 밝을 의미한다는 확실한 근거를 제시해주기 때문이다.

동이의 역사에 조예가 깊지 못했던 주희는 환국의 환과 발조선의 발을 알지 못한 까닭에 "장발"을 "길이 발현한다" "환발"을 "무력으로 다스린다" "현왕"을 "순임금의 신하 설을 말한다"라고 해석하는 오류를 범했던 것이다.

◆주희 해석의 문제점과 그가 이렇게 해석한 이유

주희의 '사서' '삼경'에 대한 주석을 살펴보면 역사 특히 동이사와 관련된 부분에서 많은 오류가 발견된다. 따라서 이 경우도 주희가 역사지식이 부족해서 이런 잘못된 해석을 했을 수 있다고 본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주희는 공자의 존화양이尊華攘夷 사상의 절대적 신봉자였다. 따라서 그의 역사관은 언제나 화하족을 두둔하고 동이족을 배격하는 입장에 서 있었던 것이 '논어'를 비롯한 여러 유가 경전 주석 상에서 확인된다.

17681796205867.jpg주희가 지은 시경집전.

하, 상, 주의 역사는 중국 고대사의 뼈대를 이룬다. 특히 상나라는 은허의 갑골문과 왕궁터의 발굴에서 보듯이 고고학적으로 증명되는 중국 최초의 왕조이다.
그런데 여기 '시경' 상송 장발편의 "환발"을 환국과 밝족으로 해석하여 상나라가 우리 환국 밝족의 후손이라고 한다면 중국 한족의 역사는 사실상 설 자리를 잃게 된다.

사마천 '사기'이후 상나라의 역사를 하夏나라를 계승한 화하족 계통의 역사에 포함시켰는데 '시경' 상송의 "현왕 환발"을 환국과 밝족으로 해석할 경우 상나라가 화하족이 아닌 밝족의 자손이 되어 중국역사의 정통성이 완전히 무너져 내리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희는 장발長發이나 환발桓發이 지닌 본래의 뜻을 알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한편 알면서도 의도적으로 "길이 발현된다"거나 "무력으로 다스린다"라는 엉뚱한 해석을 하고 환국 밝족의 뜻은 은폐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하겠다.



[심백강의 한국고대사] 동양고전으로 다시 찾는 환국 밝족의 역사(2)




"현도국의 국왕 치우가 시경에 나오는 현왕"
현왕을 상나라 '설'로 볼 수 없어…中 한족 학자들과 다른 견해 제시
설은 일생 대국 다스리지 않았고 시경의 현왕도 아무 관련 없어
구려국 지도자 현도씨 치우천왕 현도국 현왕으로 보는 게 합리적

 

 

17681796208788.jpg현도씨에 대해 기록한 상고시대 사서 죽서기년.

◆'시경' "현왕 환발玄王桓發"의 현왕玄王은 누구인가

'시경' 상송의 장발편에 나오는 "현왕 환발"은, 네 글자밖에 안 되지만 한국 상고사의 매듭을 풀어줄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환발"이라는 글자가 지닌 우리 민족사적 의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역사는 문학과 달리 느낌이나 상상만으로 결정되는 영역이 아니다. 철저한 고증을 통해서만이 실재 역사로서 인정될 수 있다.

먼저 관련 자료를 중심으로 "현왕 환발"에서의 현왕이 누구인가를 살펴보고 이어서 "환발"이 과연 우리 민족의 환국, 밝족과 어떻게 연관되는지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를 말해보기로 한다.
"현왕은 '설契'이다"라고 맨 먼저 말한 것은 모형毛亨과 모장毛萇의 '시경' 주석이다. 이어서 한나라 정현鄭玄이 그 설을 추종했고 주희가 '시경' 주석을 내면서 그대로 따랐다.
상송 장발편의 현왕을 상나라 '설'을 가리킨다고 본 것이 지금까지 중국 한족 학자들이 견지해온 입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종래 한족 학자들과 완전히 다른 새로운 견해를 제시하고자 한다.

17681796211815.jpg현도국에 대해 언급한 상고시대 사서 일주서.

'후한서' 동이전에 "동이족이 아홉 가지 종류가 있는데 견이, 우이, 방이, 황이, 백이, 적이, 현이, 풍이, 양이이다(夷有九種 曰畎夷 于夷 方夷 黄夷 白夷 赤夷 玄夷 風夷 陽夷)"라고 하였다. 이 기록은 상고시대 동이족 가운데 현이玄夷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동한 시대에 조엽趙曄이 쓴 '오월춘추吳越春秋'에는 "현이玄夷의 창수 사자蒼水使者가 하夏나라 우왕에게 홍수를 다스리는 내용이 담긴 금간金簡으로 된 책을 전해주었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는 하나라의 우왕시대에 '현이'가 존재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우리 고조 소호 지가 즉위하였을 때 봉황새가 마침 날아왔다. 그래서 새를 기준으로 하여 관직의 이름으로 삼았다. 봉조씨는 달력을 맡았고 현조씨는 춘분과 추분을 담당했다(我高祖 少皥摯之立也 鳳鳥適至 故纪於鳥 爲鳥師而鳥名 鳳鳥氏 歷正也 玄鳥氏 司分者也)"

'춘추좌전' 소공 17년 조항에 나오는 내용이다. 제비는 춘분에 왔다가 추분에 돌아가므로 현조씨玄鳥氏는 춘분과 추분을 담당했다고 한 것이다. 이는 소호 금천씨 시대에 제비를 토템으로 한 현조씨가 존재했음을 말해주는 기록으로서, 현조씨가 바로 현이玄夷가 아닐까 여겨진다.

17681796214932.jpg중국 곡부에 있는 소호릉, 소호는 새를 토템으로 했다.

그런데 주목되는 것은 '시경' 상송 현조편에 "하늘이 현조에게 명하여 내려와 상나라를 탄생시켰다 (天命玄鳥 降而生商)"라는 기록이 나온다는 사실이다.
현조편은 상나라의 위대한 제왕인 고종高宗을 제사지낼 때 연주하던 음악 가사인데 거기에 "현조가 상나라를 탄생시켰다"라고 말한 것은 상나라가 바로 현조를 토템으로 했던 현이玄夷가 아닐까 하는 추측을 가능케 한다.

여기서 '시경' 상송 장발편에 말한 현왕玄王은, 현조를 토템으로 한 현이玄夷의 최고 지도자이자 상나라 시조였던 인물을 가리킨 것이라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현왕은 현도국玄都國의 국왕이다

주희는 '설契'을 현왕이라 비정하고 "현은 심오, 은미함을 지칭한다.(玄者 深微之稱)"라고 설명했지만, 필자는 현왕은 현조玄鳥를 토템으로 한 현이玄夷의 최고 지도자를 가리킨 것이라고 보는데 그러면 현왕은 과연 구체적으로 상고시대의 누구를 지칭한 것일까.

'좌전'의 기록에 봉조씨와 함께 현조씨가 나오는 것을 본다면 그 시기는 씨족시대였던 것이 분명하다. 씨족시대에 '시경'상송 장발편의 현왕과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는 어떤 국가나 인물이 존재하는가.

'일주서逸周書'에는"옛적에 현도국이 있었는데 귀신을 숭상했다.(昔者玄都 賢鬼道)"라고 하였고 '죽서기년竹書紀年'에는 "순임금 42년에 현도씨가 와서 조공하여 귀중한 구슬을 바쳤다. (舜四十二年 玄都氏來朝 貢寶玉)"라고 하였다.

'일주서'는 공자가 '서경'을 편찬할 때 중화사관에 저촉된다고 해서 삭제한 기록이고 '죽서기년'은 서진西晉시대(서기279년) 급군汲郡의 고분에서 발굴된 죽간을 정리 편찬한, 진시황의 분서焚書를 거치지 않은 책이다.

동이족의 역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진귀한 이 두 기록은 상고시대에 현도국과 현도씨가 실재했음을 보여주는데 '시경'에 말한 현왕은 바로 이 현도국의 국왕 현도씨를 가리킨 것이라 여겨진다.

현도국의 현玄은 주희의 말처럼 심오하다는 뜻이 아니라 현조玄鳥를 토템으로 한 현이玄夷가 세운 나라에서 유래했고 현왕玄王은 바로 이 현도국의 국왕을 지칭한 표현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현도국의 국왕을 현왕이라 했다면 현왕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현도국 현도씨의 실체를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

◆중국 상고사를 집대성한 '노사路史'에 보이는 현도씨 여국黎國

17681796217539.jpg중국 상고사를 집대성하여 저술한 나필의 노사.

남송시대에 나필羅泌(1131~1189)이 중국의 상고사를 집대성하여 편찬한 '노사路史'에는 "현도는 소호시대의 제후이다.(玄都 少昊時諸侯)"라는 기록이 보인다. 현도씨는 오제의 첫 제왕인 소호금천씨 시대에 활동했던 씨족이다.

그런데 '노사' 에는 "소호씨가 쇠망하자 현도씨 여黎가 실로 천덕을 문란시켰다.(小昊氏衰 玄都氏黎 實亂天德)" "현도씨는 여국이다.(玄都氏黎國)"라는 기록도 보인다. 이는 현도국의 원류를 밝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된다. 여기서 여국黎國이 바로 현도씨 현도국의 다른 이름임을 알 수 있기 때이다.

'노사' 국명기國名紀에 "여黎는 하나라의 제후 구려九黎이다. (黎夏諸侯九黎)"라고 하였다." 이 기록에 따르면 여국과 구려국은 동일한 나라다. 여기서 여국, 구려국, 현도국은 표현은 다르지만 실체는 같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현도씨 여국, 구려국의 최고 지도자는 치우蚩尤천왕

17681796220794.png중국 산동성 양곡현 치우릉에 있는 치우 동상.

고대 사서의 여러 기록에 따르면 구려국의 최고 지도자는 바로 치우천왕이었다. '국어' 초어 주석의 "여씨 9인은 치우의 무리이다.(黎氏九人 蚩尤之徒也)" '상서尚書' 여형吕刑 주석의 "구려의 임금은 호를 치우라 한다.(九黎之君 號曰蚩尤)" 당唐 나라 육덕명陸德明 '상서석문尚書釋文'의 "치우는 소호시대 말엽 구려국 군주의 명칭이다. (蚩尤 少昊之末 九黎君名)" 등이 그것을 증명한다.

◆구려국, 현도국의 국왕 현도씨 치우蚩尤가 바로 현왕玄王이다

위에서 현도씨족 구려부족이 세운 나라를 현도국 또는 구려국이라 하였으며 현도국의 최고 지도자는 치우였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그런데 이 현도국의 국왕 치우가 바로 '시경' 상송에서 말한 현왕이라고 필자는 믿는다. 현도씨 치우를 현왕이라고 보는 근거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17681796223988.jpg한나라의 대표적인 학자 정현, 설이 상나라의 시조 현왕이라고 주장했다.

첫째 상나라의 '설'은 일생 국왕이 된 일이 없다. 그러나 치우는 천하를 다스린 제왕이었다는 것이 '일주서'의 "사방에 군림하였다(以臨四方)"라는 기록으로 증명된다. 그러므로 현왕은 상의 '설'이 아니라 치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둘째 상나라의 '설'은 명칭 상에서 '시경'의 현왕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의 씨족명칭이 현씨였다거나 국가명칭이 현국이었다는 어떠한 근거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치우는 씨족명이 현도씨였고 국가명이 현도국이었다. 그러므로 현왕은 치우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논리적이다.

셋째 상나라의 '설'은 작은 땅에 봉해진 일은 있지만, 대국을 다스린 일이 없다. 그런데 상송 장발편에서는 현왕이 "소국을 받아도 통달하고 대국을 받아도 통달했다 (受小國是達 受大國是達)"라고 말했다. 이는 치우천왕이 새로운 무기를 개발하여 여러 크고 작은 나라들을 굴복시키며 국가의 강역을 크게 확대시킨 과정을 설명한 것이다. 그러므로 현왕은 치우천왕으로 보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이 있다. 



[심백강의 한국고대사] 동양고전으로 다시 찾는 환국 밝족의 역사(3)




"여국·구려국·현도국, 모두 환국을 뜻한다"

 

17681796226828.jpg새토템의 상징, 봉황새를 조각한 백제_금동대향로.

◆'서경書經'의 여민黎民은 "검은 머리 백성"이 아니라 여국黎國의 백성을 말한다

'서경' 요전편堯典篇 서두에 요임금이 "만방을 화해 협력하도록 하자 여민黎民이 변화를 일으켜 화합하였다. (協和萬邦 黎民於變時雍)"라는 내용이 나온다.
주희의 제자로서 그 유언에 따라 '서경'을 주석한 채침蔡沈은 '여민黎民'을 "여는 검은 것이다. 백성의 머리가 다 검으니 그러므로 여민 이라 한 것이다. (黎黑也 民首皆黑 故曰黎民)"라고 하여 "머리가 검은 백성"이라고 풀이했다.

17681796229699.jpg밝달도에 대해 최초로 언급한 최치원.

채침이 '여민'을 "머리가 검은 백성"이라고 해석한 것은 현도씨 여국黎國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 데서 온 견강부회라고 본다. 백성은 머리가 검은 젊은 청년들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반백도 있고 백발노인도 있기 때문이다.
'서경'의 여민黎民은 바로 여국黎國의 백성을 가리킨 것으로서, 동아시아 최초의 부족 국가인 구려九黎 부족 집단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그러니까 '여민'은 본래 여국의 백성이라는 고유명사에서 뒤에 일반 백성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로 된 것이다.

◆여국黎國의 여黎는 여명黎明의 뜻으로 우리말 '밝'의 한자 표기다

'관자'를 비롯한 중국문헌에 의하면 '여민'이 살던 여국은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동銅을 사용하여 병기兵器를 제조했고 형법刑法을 제정하여 백성을 다스렸다. 동아시아의 역사 문화가 이들에 의해서 첫걸음을 떼었다.

그러면 상고의 전설시대에 동아시아에서 최초로 인간 공동체를 형성하고 국가를 건국한 이들을 가리키는 이름이 왜 하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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