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맨의 하루#21 무능한 사원은 없다.

유머

영업맨의 하루#21 무능한 사원은 없다.

bahh 0 68,301 12.29 15:18

가치를 모르는 상사가 있을 뿐.

 

2000년은 중국이 해외자본, 공장을 적극적으로 유치할 때야. 이전부터 국내 굴지 대기업들은 지속적인 투자를 해 왔고 중국 경제가 급성장하면서 공장 증설을 계속하고 있었지. 우리 역시 이 대기업들과 보조를 맞춰야 했기에 중국 강*시에 철강 가공센터를 짓고 있었어. 공장을 짓는 것과 동시에 거래선 이미 확보했거나 추진 중인 과의 업무 파악, 생산 협의를 위해 본사에서 현장 관리, 생산, 영업 인원 10여 명을 파견 보내야 했어. 새로 영입한 중국어 능통자 포함 신입, 경력 다섯을 포함해서 말이지.

 

중국 공장이 완공되면서 본사 파견 주재원이 정해지고 중국 현지 직원들로 채용이 마무리되자 필수 인원을 제외한 신입, 경력자 넷이 국내로 복귀하면서 약간의 문제가 발생했어. 한 명이 갈 자리가 없었던 거야. 중국어 능통자는 수출 가전부로 똘똘한 넘은 관리부서로, 엔지니어는 공장으로 부서 팀장들이 미리 점찍어 데려갔는데 진** 대리만 홀로 남게 된 거지. 어쩔 수 없이 한직인 출고부서로 발령. 술 못하고 말 없는 진**대리, 부서 직원들과 잘 어울리지 못했어. 회사 생활하려면 사람이 좀 눈치라도 있어야는데 진 대리는 그것마저 없었지. 당연히 출고 팀장은 물론 직원들과도 대면대면, 부서에 녹아들지 못했어.

 

부서장들과는 정기적인 술자리가 있어. 일하다 보면 종종 팀과 팀 사이에 부딪히는 건들이 생겨나기 마련. 수출팀, 국내 영업 1,2,3팀에서 서로 급하게 내린 작업지시를 현장에선 적절히 조율해야 하고 출고 순번을 두고도 간혹 마찰이 생기니까. 대게는 서로 협의해서 원만히 진행되는데 주문이 갑자기 폭주하거나 대기업 밴드들이 긴급하게 일정 단축 요구를 하면 수출부, 국내 영업팀들 간에도 미묘한 신경전이 벌어지고 생산관리부서와 언쟁도 생기지. 뭐 그렇게 푸는 거야. 팀장들끼리 술 한잔하면서 말이지. 그날도 회사 근처 삼겹살집서 팀장들끼리 한잔하고 있었지. 술이 몇 순배 돌자 출고 팀장이 진 대리 얘기를 꺼내는 거라. 지켜 보는 게 참 거기기하다고. 하는 일이란 게 공장에서 제품 생산이 완료되면 출력해서 제품에 태그-제품명, 사이즈, 중량, 길이, 제품I.D 등을 기록한 이름표-부치는 건데 간혹 실수한다는 것과 부서원들과 친목을 위해 술자리를 가져도 도무지 마음을 열지 않는단 거였어. 난 그럴 수 있다 여겼지. 중국 공장 짓기 위해 나름 고학력자를 뽑아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여간 실컷 고생하고 왔는데 돌아갈 자리가 없다는 것부터 당황스러웠을 테고 기껏 맡은 일이 단순노무직이었으니.

 

난 평소 생각하는 게 있었어. 다음날 출근하자마자 중국 법인장에게 전화를 걸어 진 대리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지. ‘애는 어떠냐?’‘일은 잘했냐?’ 답은 명료했어. 맡은 일 잘하고 성실한데 애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단 거였어. 회식 때 못 먹는다는 술 억지로 먹였다가 난리 난 적도 있었다지. 총무팀에 가서 진 대리 인사기록표를 봤어. **대학 경영대 출신에 학점도 좋았지. 곧바로 전무님을 찾아 부탁했어. 진 대리 내가 데려가고 싶다고. 이유를 물었고 난 준비된 답을 했어. 건축 관련 매출이 늘고 있다. 늘 살얼음판이다. 당장은 필요 없지만 앞으로 업무가 늘어 날 것인데 그때 가서 신입 사원 충원하느니 그래도 중국 공장 경험 있는 진 대리가 낫지 않겠냐. 회사 돌아가는 일을 시시콜콜, 사소한 것 하나 놓치는 법이 없던 전무님이 그러셨지. ‘말주변 없고 술도 못하는 진 대리가 영업을 할 수 있겠냐’. 난 그랬어. 담보 대비 500% 어떤 곳은 1,000%까지 물품 공급하는데 해당 업체 영업자들이 리스크를 예측하고 대비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를 제3자의 관점에서 객관적으로 업체 사정을 평가할, 관리할 인원이 필요하다. 진 대리에게 이 일을 맡기고 싶다 했지. 전무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본인 의사도 중요하니 확인하라 하셨어.

 

두어 번의 점심 먹고 커피 마시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가 저녁 술자리 물론 진 대리는 술을 마시지 않았지만- 에서 진 대리에게 제의했어. 내 팀에서 같이 일 한번 해보자고. 진 대리는 그랬어. 영업부서는 회사의 꽃인데 자신이 그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내가 생각하는 바를 얘기했지. 전무님께 말한 그대로를 말이야.

 

그렇게 진 대리는 우리 부서로 오게 되었어. 백여 개의 거래처 재무상태, 결제 관계, 위험도, 등급 등을 나름대로 메겨보라는 숙제를 던졌지. 문제점이 발견되면 개선 방향도 제시해보라면서. 큰 기대는 하지 않았어. 다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 빠른 시간내 업체 파악이 되거든. 중간중간 영업자들에게 진 대리와 동행, 업체 탐방을 시킨 건 물론이고. 당시는 특히 영업부서는 저녁을 겸한 술자리가 많았지만 진 대리에겐 일절 술 권하지 않았어. 소주잔에 기분만 내라며 음료수를 줬지. 나중에 안 얘기지만 진 대리가 술 못하는 이유가 있었어. 체격도 후덕하여 남들이 보면 술 잘할 줄 알고, 실지로 못 마시는 건 아닌데 건강하게 보이는 외모와는 달리 걸어 다니는 종합병동이랄까? 그 나이에 당뇨, 혈압약을 달고 살고 기관지며 시력, 어디 한군데 성한 곳이 없다는 거였어. 그러니 못 마시는 게 아니라 안 마셨단 게지.

 

다섯 시 삼십 분, 땡 하면 퇴근하는 다른 직원들과는 달리 진 대리는 혼자 회사에 남아 내가 맡긴 숙제를 열심히 했어. 지금이야 인터넷 찾아보면 상장업체든 아니든 웬만한 회사정보-재무상태, 매출액, 영업이익, 당기순이익, 현금보유, 흐름 등-를 쉬 알 수 있지만, 당시는 신용보증기금이나 기술보증에서 평가한 그야말로 보나 마나 한 자료들밖에 없었지. 한 달여가 지났을까? 출근해보니 전면에 거래업체 분석이라 제목 적힌 두툼한 서류가 그러니 진 대리가 작성한 보고서가 책상 위에 놓여 있었어. 커피 내려 마시면서 첫 장부터 찬찬히 읽었지. 나름 형식을 갖춰 열심히 한 티가 났었어. 하지만, 뭐 내가, 담당 영업자들이 여기던 바와도 다르지 않아 눈여겨볼 만한 건 없었지. 근데 마지막 단락, 종합의견-현실태, 문제점, 개선방향- 중 한 구절이 눈에 확 들어오는 거라.

 

거래처 현장(생산) 직원들과의 소통, 관리가 필요하다.’

 

대게는 그래. 영업자들이 거래업체를 방문하면 대표자나 담당자 만나 이런저런 얘기하고 점심 먹고 명절에 선물, 상품권 보내고 주요 업체는 때때로 담당자들과 술자리 가지는 정도랄까. 근데 공장에 근무하는 생산직 팀장이나 직원들과도 소통이 필요하고 관리까지? 여기서 관리는 적당한 접대를 말하는 거야. 영업자들이 생산 현장을 아예 가지 않는 건 아냐. 한 번씩 휙 둘러보지. 혹 영업자들도 모르는 경쟁 회사 제품이 있는지, 좋지 않은 소문이 들리면 현장의 정돈 상태, 직원들의 근무 태도, 표정들을 살피곤 하지. 하지만 이것도 드문 경우. 진 대리가 제안한 것처럼 현장 직원들과 유대를 가진다거나 접대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던 거지.

 

보고서를 들고 진 대리와 회의실로 갔어. 수고했다, 꼼꼼하게 잘 작성했다. 이제 우리 부서 관리 업체들에 대해선 파악되었겠다는 의례적인 칭찬을 하고선 물었어. 이게 뭐냐고. 자세히 설명해보라 했지. 현장 직원들과 소통이 잘 되면 유, 무형의 이익이 생긴다. 까다로운 작업 사양이 내려와도 면을 터놓으면 큰 불만, 불평 없이 해낸다. 맞어, 우리 회사만 하더라도 조금만 난해한 작업지시서가 내려가면 현장 담당자는 팀장에게 팀장은 공장장에게 불평, 불만 쏟아냈으니까. 큰돈 필요한 것도 아니다. 담당자들이 업체 방문할 때 현장 직원용 제과점 과자나 빵, 특히 더운 여름 시원한 수박이나 아이스크림 몇 통, 몇 박스 들고 가도 현장 직원들은 고맙게 여긴다는 것. 대접받고 있다 여긴다는 거야. 거래업체 담장자나 대표는 절대 회사의 어려움이나 부정적인 부문을 얘기하지 않지만, 현장 책임자나 직원들은 다르다. 밥자리, 술자리 가져보면 미처 파악하지 못한 회사정보들을 의외로 쉬 알 수 있다는 걸 진 대리는 중국 현지 경험을 토대로 줄줄 말하는 거였어. 그 무뚝뚝하고 말 없는 넘이 말이야.

 

몇 달이 지나 진 대리가 기본적인 업무 파악할 때쯤, 공들이고 있는 그러니 신규 추진 중인 업체 몇 군데를 데리고 갔어. 재무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업체들이었지. 워낙 동종 업체들이 저가로 견적을 넣는 바람에 큰 기대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가만 지켜볼 수는 없잖아. 한번 해보라 그랬어, 부담 갖지 말고. 아울러 결제가 번번이 미뤄지고 있는 요주의 업체들 몇 곳도 소개 해줬고.

 

그러길 또 몇 달이 지났지. 어라, 진 대리가 신규 업체들을 하나, 둘 물고 오네? 그것도 결제조건, 사용량, 마진율이 꽤 괜찮은 업체들로 말이야. 발로 뛰는 거였어. A란 거래처 가는 길이면 그 주위 공단 지역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거였지. 난 궁금했어. 영업부서로 이직한 지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고 말주변도 없는 진 대리가 어떻게 담당자를 설득, 거래를 틀 수 있었는지 말이야. 그냥 무작정 찾아간데, 담당자 찾아 간단히 인사하고 명함, 브로셔 주고는 멀뚱히 있는데. 그게 다래. 먼저 말하지 않는다는 거지. 상대방은 뭐 이런 이상한 놈이 있나 싶겠지. 지가 용건 있어 찾아 와놓고 정작 입을 다물고 있으니 말이야. 틈만 나면 가서 그런다는 거야. 그럼 상대는 질렸든지 아님 측은했든지 어라 먼저 말을 걸어온다네, 심지어는 자신들은 거래처 바꿀 마음이 없으니 다시는 오지 말라면서도 그렇게 계속 찾아온 게 기특했는지 견적서는 한번 팩스로 보내보란다네. 그게 또 인연이 돼 계속 가고.

 

그게 통하냐?”는 물음에 진 대리는 식~ 웃기만 했지.

 

회사에서 관리 대상 중인 충남 논산의 **테크, 진 대리에게 소개해줬던 요주의 업체 중 한 곳, 대금결제가 4개월째 미뤄져 회사에선 법적 절차 지급명령, 가압류 등-를 검토 중일 때였어. 당시 이 회사는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자금난에 시달리고 있었지. 진 대리와 회사를 찾아 대표자를 만났어. 사정 설명할 수밖에 없었지. 이대로는 안 된다. 대금결제가 지금처럼 계속 미뤄지면 회사로서도 가만있을 수만은 없다. 대안을 제시해달라. 사실 법적 절차를 거쳐도 실익이 없었어. 공장 등기부 등본에 담보 1,2순위는 은행이었고 우린 3순위. 경매 절차를 거쳐 우리가 쥘 수 있는 금액은 그야말로 조족지혈, 때문에, 어떡해서든 대표자를 설득하려 분할납부 등 여러 가지 방안을 제시했었어. 공장은 계속 돌려야지 않냐면서 말이야. 아무런 소득이 없었어. 대표님은 뻔한 얘기,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만 했지. 언제까지란 단서도 없이 무작정 기다려달라는 게 말이 돼.

 

**테크 다녀온 지, 며칠이 지났을까. 일단 법적 절차를 진행하면서 -미수금을 지불해달라는 내용증명을 보내는 등- 계속 협상하기로 정해졌을 때였어. 진 대리가 등기부 등본 하나를 내게 내미는 거야. , 놀라자빠지는 줄 알았어. 그건 충남 논산 공단 지역에 **테크와 일반인 1명이 공동 지분으로 되어있는 4천평 가량의 부지였어. 소유권 이전된 이후 단 한 곳도 담보 설정되지 않은 그야말로 깨끗한 물건이었지. 물었어. 이걸 어떻게 알았냐고? 내가 맡긴 보고서 작성을 위해 혼자 **테크에 업체 탐방 간 날, 대표자는 부재중이라 만나지 못했고 담당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고 마침 점심시간이 되었고 외부 식당 가자는 걸 그냥 구내식당에서 간단히 먹자고 했고 **테크 구내식당에서 밥 먹다 뒤쪽 어딘가에서 현장 직원들이 나누는 얘기를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는 거야.

 

이사는 언제 간다는 데?’‘아직 부지만 있지 공장 짓고 하려면 몇 년 걸린다던데’‘이사 가면 지금 구닥다리 기계들도 싹 다 바꾸나?’‘그건 모르지

 

진 대리와 내가 아무런 소득 없이 **테크 대표를 만나고 온 그날 말이야.

 

**테크 속한 공단 빈 부지는 물론 새 공업단지가 들어서 분양 중인 인근의 공업단지 수백 곳의 등기부 등본을 일일이 다 떼 봤다는 거였어. 혹시나 하고, 틈만 나면 말이지. 일과시간이 모자라면 야근까지 해가면서. 대단한 놈. 순간 얼마나 통쾌했는지. 진 대리는 또 어땠겠어? 그런 정보를 알았으면 말했어야지, 같이 찾았으면 수월했을 것 아니냐는 물음에 진 대리는 투박하게 말했지.

 

나도 설마 **테크가 튀어나올 줄 몰랐습니다. 시간이 남아 한번 살펴봤습니다.”

 

시간이 남기는, 누구보다 일찍 사무실 나오고 늦게 퇴근하면서, 전날 영업자들이 남긴 오더 정리해 생산관리팀에 넘긴 다음에야 08:30 땡 자기 일하는 친구가 말이야. 이후 일은 일사천리, 다음 날 바로 법원에 가압류, 지급명령 신청부터 했어. 화가 많이 났었지. 돈 없다고 결제 대금 미루면서 땅을 샀다니 말이야. 느긋하게 기다렸어. 빠르면 보름 늦어도 한 달 내 가압류 결정나면 **테크에도 송달이 될 테니.

 

아니나 다를까. 우리 회사로 가압류 결정 통지서가 송달된 다음 날 **테크 대표님으로부터 전화가 왔어. 뭐 이런저런 뻔한 핑계를 대더니 우리 사이가 이것밖에 안 되나며 오히려 화를 내고. 우리 사이는 개뿔. 뭐 별다른 얘기하지는 않았어. 회사로선 화가 많이 나 있는 상태다. 결과적으로 우리 회사에 지급할 자금으로 부지 매입한 거 아니냐. 상당한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 하여 법원에 지급명령 신청도 했다. 일주일 내 답을 달라. 대표의 그런 게 아니다.’ ‘투자받은 자금으로 매입한 거다등의 변명이 더 열 받게 했지. 이후 분할납부 요청이 왔지만(진작에 그러지) 딱 짤라 거절했어. 가압류와 압류는 사정이 달라. 깨끗한 물건에 압류 딱지 붙은 흔적이 있으면 해제 후 일정 기간 지나기 전까지 신용보증기금에서 보증서 발급이 어렵고 당연히 은행 대출도 막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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