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 심는다고 다져놓은 밭이 좋은지 계속 나가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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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 심는다고 다져놓은 밭이 좋은지 계속 나가계심

콘텐츠마스터 0 61,399 05.26 2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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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0년대 경기도 팔당 야산에서 나물을 캐던 한 할머니가 발견해 집에서 '참기름병'으로 쓰던 백자 한 점이 있었습니다. 1원에 참기름을 담아 팔던 이 병은 사실 조선 왕실용 자기를 굽던 가마터에서 나온 최고급 백자였습니다. 현재 국보로 지정된 이 유물에 대한 이야기는 뉴스저널리즘 기사에서 상세히 다루고 있습니다.

 

이 유물은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白磁 靑畵鐵彩銅彩草蟲文 甁)입니다.

  • 국보 지정: 대한민국 국보 제294호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 제작 시기: 18세기 전반,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 특징: 조선시대 도자기로는 이례적으로 하나의 작품에 청화(파란색), 철채(검붉은색), 동채(붉은색) 등 다채로운 색을 사용하여 초충(풀과 벌레) 문양을 회화적으로 표현했습니다.

  • 소장처: 현재 간송미술관에서 소장하고 있습니다.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白磁 靑畵鐵彩銅彩草蟲文 甁)은 대한민국서울특별시에 있는 조선 후기의 백자이다. 청화, 철채(鐵彩), 동채(銅彩)로 초충문[주해 1]을 그려넣었다. 1963년 보물 제241호 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병으로 지정되었다가, 1997년 1월 1일 국보 제294호로 승격되었다.

특징

이처럼 하나의 작품에 청화 동화 철사를 양각과 함께 곁들여서 장식한 백자병은 이것 외에는 그 예가 없는 드문 작품으로, 크기도 이 종류의 조선시대 병 가운데 비교적 큰 작품이다. 현존하는 필통연적ㆍ병중에 양각수법과 청화 철사의 안료로 채색된 작품들이 18세기 후반 정조 연간의 작품으로 남아 있어 비교된다.

긴 병목의 비례가 몸체와 어울려 보기 좋은 이 작품은 18세기 후반 광주 분원리 가마에서 특별히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개성 지방에서 세대를 이어 전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는 뛰어난 작품이다.

모양

쭉 뻗어 길게 세워진 목과 어깨에서부터 벌어져 공 모양의 몸통을 이루었으며, 넓고 낮은 굽다리로 되어있어 안정감을 주는 대형의 병이다.

문양은 몸통 전면에 활짝 핀 국화난초 사이로 나비를 한 폭의 그림처럼 양각으로 양면에 나타내었다. 양각의 국화는 동화로, 국화 줄거리와 잎은 철사로, 난초는 청화로, 벌과 나비는 철사 동화로 채색했으며, 그 빛깔을 낸 효과도 뛰어나다.

담청을 머금은 유백색의 부드러운 유약이 전면에 발라졌으며, 미세하게 유빙렬[주해 2]이 나있다.

굽다리에는 모래로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다.

주해

  1. 초충문(草蟲文)이란 풀과 벌레 무늬를 가리킨다.

  2. 유빙렬(釉氷裂)은 도자기를 가마에서 꺼낸 뒤에 유약이 식으면서 간 금을 이르는 말이다.

참고 자료

 

백자 청화 철채 동채 초충문 병

白磁 靑畵 鐵彩 銅彩 草蟲文 甁

  • 예술·체육

  • 작품

  • 조선 후기

  • 국가문화유산

조선 후기의 백자 병.

이칭

  • 이칭청화백자철사진사국화문 병

국가문화유산

집필 및 수정

  • 집필 1995년

  • 강경숙 (충북대학교, 공예)

  • 최종수정 2023년 02월 07일

미디어 정보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으로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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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백자 병.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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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높이 42.3㎝, 입지름 4.1㎝, 밑지름 13.3㎝. 간송미술관 소장. 남아 있는 조선시대 백자들을 보면 대체로 단순한 형태와 문양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의장면(意匠面)에서 다채로운 색채의 사용을 절제하는 경향을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으로 볼 때 양인각(陽印刻)으로 시문된 문양 위에 청화·철사·진사를 함께 곁들여 장식한 예는 조선 도자에서 매우 이례적인 것으로 주목된다.

 

형태는 가늘고 긴 목이 점차 넓어져서 어깨로 이어지며 몸체는 풍만하게 부풀었고 약간 낮은 굽을 형성하였다. 굽은 선을 그은 듯이 분명하게 구분하고 있으며, ㅇㅏ가리는 그대로 끊어내어 날카로운 맛이 있다. 18세기 전반경의 백자병은 대체로 ㅇㅏ가리의 끝이 약간 밖으로 벌어지거나 ㅇㅏ가리의 끝을 밖으로 말아 둥글게 마무리한 형태의 것이 많은 데 비하여 이 병과 같은 ㅇㅏ가리의 형태는 드물게 보이는 것이다.

병의 앞뒤 양면에는 국화와 난초가 회화적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벌과 나비들의 노니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무늬는 돋을무늬로 양인각한 뒤 난초는 청화, 국화는 진사, 국화 줄기와 잎은 철사, 벌과 나비는 철사 또는 진사로 채색하였으며 발색은 양호하다.

투명한 백자유가 약간 두껍게 입혀졌는데 유의 발색은 부드러우며 전면에 걸쳐 세밀한 그물모양의 빙렬이 나타나 있다. 굽 밑에도 유약을 입히고 굽다리에 내화토(耐火土)가 약간 묻어 있다.

이 병은 같은 종류의 조선 백자 중에서는 큰 편에 속하며, 온전하게 보존된 전세품으로서 개성에서 온 것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유태의 질, 형태의 적정한 비례감, 세련된 문양표현 등으로 미루어 보아 18세기 전반경 경기도 광주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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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특별전도록』22 광주분원리요청화백자(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1994)

  • - 『한국의 미』2 백자(정양모 감수, 중앙일보사,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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