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업맨의 하루#22 자식이라는 '콩깍지'

유머

영업맨의 하루#22 자식이라는 '콩깍지'

bahh 0 75,706 01.10 14:08

 늦은 저녁 친구 만나 소주 마시고 집 가는 중이었어. 휴대폰이 울리네. 울산서 직장 다니는 큰아들이었지. 순간 살짝 드는 긴장. 부자지간 여간해선 전화할 일 없는 데다 늦은 저녁이었으니. 아니나 다를까 어라, 목소리가 착 가라앉아있네. 뭔 일 있나 싶어 물었더니 별일 아니라는데 어라,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메인 목소리. 뭔 사단이 난 건가. 직장 잘 다니는 줄 알았는데 아닌가. ‘주말에 시간 되시냐’‘오랜만에 같이 저녁 했으면 좋겠다기에 그러자 했지. 내색은 안 했지만, 설 걱정 들기 시작했어. 무슨 일일까? 목소리로 보아하니 분명 좋은 일은 아닐 텐데.

 

 내겐 세 살 터울 아들 둘이 있어. 큰 애가 해군사관학교 특별전형 합격한 날. 아내와 난 정말 기뻤지. 본인은 말할 것도 없고. 초등학교 때까지 프로축구팀 소속 유소년 축구클럽에서 선수로 뛰었던 큰 애는 뭐 공부도 그럭저럭 했어. 난 은근히 계속 축구 하길 바랐지만, 중학교 진학하면서 공부하겠다며 축구를 포기했었지. 꽤 아쉬웠어. 잘했거든. 6학년 때 열렸던 **컵 유소년 축구 대회 16강전은 아직 기억이 나. 상대 팀은 명실상부 초등부 최강인 서울 대*초등학교. *, *우 지금도 프로축구팀서 맹활약 중이고 국가대표로 뛰고 있는 애들이 주축이었지. 그런 팀을 3-2로 꺾고 4강까지 갔으니 말야.

 

 전국대회에서 유수한 선수들과 뛰어보니 도저히 그 선수들보다 앞설 자신이 없더래. 또 선수들은 크고 작은 부상을 달고 살아. 유망한 친구들이 부상으로 중도 포기하는 경우도 많지. 그럴 때마다 당사자는 물론 이를 지켜봐야 하는 부모 속은 숯검댕이 되는 거지. 모두들 국가대표를 꿈꾸고 장차 프로팀에서 뛰기를 바라지만 2군 아니 2, 3부리그도 감지덕지. 큰 애는 그 나이에 현실을 직시했다고나 할까. 그래서 공부하겠다며 일반 중학교로 진학은 했는데. 흐흐흐 볼만했지. 공부한답시고 책상에 앉자마자 꾸벅꾸벅 조는 덴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어. 2년 동안 축구하고 밥 먹고 자고 학교 가고, 마치면 또 클럽하우스 가서 훈련하고 저녁 먹고 자던, 몸에 벤 그 습관이 어딜 가겠어. 중학교 진학 후 첫 시험인 중간고사에서 340명 중 270등인가를 한 날 저녁, 아내 앞에서 펑펑 울었다지. 나름 허벅지 꼬집어 가며 열심히 했다는데 말야.

 

 다음 날 아침, 네 식구 둘러앉아 밥을 먹는데 큰 애는 당장이라도 울음이 터질 듯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어. 그러더니 말을 꺼내네. ‘아버지, 다시 축구 하면 안 됩니까?’가능하지. 하지만 자신이 한때 몸담았고 가길 원하는 프로팀 소속 15세 이하 팀은 이미 지난 겨울에 팀 구성이 끝나 시합까지 뛰고 있는데 지금 다시 합류한다? 어려운 일이야. 일단 12세 이하 감독님께 말은 해보겠으니 한번 기다려보자 그랬지. 출근하면서 U-12 감독님께 전화했어. 2년 동안 정이 많이 든 분이라 사정 설명을 했지. 가능하겠냐고. 저녁에 바로 전화 오더만. U-15 감독과 자리 만들어 볼 터이니 같이 한번 보자고. 꽤 비싼 갈비집으로 약속 정하고 봉투에 수표 몇 장 넣어 갔어. 셋이 만나 소주 마시며 그간 있었던 일, 사정 설명했지. 듣고만 있던 u-15 감독님이 그러는 거야. ‘아버님 생각은 어떠시냐?’‘데려가는 건 문제 될 게 없다. 능력 있는 아이니까’ ‘다만 끝까지 믿고 맡길 수 있나?’ 너무 당연한 물음에 난 바로 얘기했어. ‘어렸지만 여태껏 본인 의사를 존중해왔다.’‘지금도 마찬가지다.’ 일은 수월하게 풀렸어. 다음 날 클럽하우스에서 입단 서류 받아가란 문자를 받았으니.

 

 난 기분이 좋아 오후 일 대충 마무리하고 클럽하우스로 향했어. 부모가 기분 좋은 일이 뭐 있어. 자식이 자기 하고 싶은 대로 길 터주는 거에 보람 느끼고 그런 거 아냐? 무엇보다 경기장에서 뛰는 큰 애를 다시 볼 수 있다 여기니 나까지 살짝 흥분되었었지. 내 자식이 선수로 뛰는 경기는 월드컵 한. 일전만큼이나 재밌고 짜릿해. 그날 저녁 입단 서류를 거실 테이블에 두고 학원 마치고 오는 녀석을 기다렸어. 기뻐할 큰 애를 상상하면서 말이지. 이 대단한 아버지가 어려운 일 성사시키기 위해 얼마나 수고했는지? 까지는 아니더라도 쉬운 일은 아니었단 정도는 말해야지. 그래야 더 열심히 하겠지 등등을 되새기며. 허나, 망구 내 생각, 홀로 북 치고 장구 쳤단 걸 깨닫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어.

 

 출근길에 장문의 문자를 받았어. 큰 애가 보낸 거였지. 죄송하다며 시작된 글에는 축구는 원 없이 해봐 지금 관둬도 미련이 적지만 공부는 이제 막 시작했다. 일단 축구에 쏟은 노력만큼이라도 공부를 해보고 싶다. 그러지 않음 나중 후회할 것 같다. 다시 한번 죄송하다며 끝을 맺었지. 순간, 화가 났어. 대체 뭐하는 놈이냐. 그런 생각이었으면 일찍이라도 얘기를 해주지. 이 상황에서 되물린다? 감독들은 또 무슨 생각을 할 거냐. 자식 의사도 충분히 알지 못한 성급한, 실없는, 못 난 아버지가 돼 버릴 거 아닌가. 화를 삭이며 운전하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드는 거라. , 걔는 또 얼마나 생각이 많았을까. 이제 기껏 열 서넛 살 먹은 녀석이 자신의 진로를 두고 고민 많이 했을까. 구단에 제출해야 할 입단 서류를 앞에 두고 밤새 또 얼마나 많은 시나리오를 돌려 봤을까. 동년배 친구들은 겪기 어려운 양자택일, 선택의 순간에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녀석의 심정에 설설 이입되는 거야. 어린 녀석이.

 

 그렇게 한바탕 소란 아닌 소란을 겪은 후, 큰 애는 미친 듯이공부하더군. 꾸벅꾸벅 조는 습관도 수개월이 지나니 고쳐지고. 그래, 성적은 조금씩 꾸준히 올랐어. 중학교 졸업할 때쯤엔 담임 선생님도 놀랄 정도였다지. 그렇다고 공부만 하진 않았어. 축구에 남은 미련은 토요일 오전 아마추어팀서 해결했지. 방학 때면 시합도 뛰고. 그렇게 고등학교 가고 성적은 또 계속 올라 자신이 가고 싶었던 해군사관학교 그것도 특별전형에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던 거지. 한동안 축하받기 바빴어. 수능에서까지 해방되었으니 그야말로 꿀맛 같은 나날을 보냈지. 어떻게 알았는지 내게도 전화가 오네. 동네 막걸리 먹는 형님들, 유소년 축구시절 학부형들, 심지어는 연락 뜸한 친구들까지. 축하받고 술 먹는 나날이 계속 되었어. 꽤 많은 술을 샀지만 한 푼도 아깝지 않았다. ? 대견했으니. 또 살짝 이런 생각도 드는 거야. 인서울 대학 가면 대략 잡아도 학비에 방값에 용돈에 4년간 족히 7-8천만원 정도는 들 터인데 그 돈 굳었다. 그러니 그깟 술값 일이백이 뭔 대수라고.

 

돼럼(친척 시동생을 부르는 경상도 사투리), 아지뱀(시아주버니를 부르는 경상도 사투리) 왔다 갔는데 **가 해군사관학교 합격했다메?’

 

 받을 만한 축하는 다 받고 살 만한 술은 다 샀을 때쯤, 가입교 훈련 입소를 며칠 앞둔 날, 고향 마을, 친척 형수님이 전화 주셨어. 목소리는 꽤 상기되어 있었지. 형님이 시골 가는 길에 사실을 전한 모양이었어. ‘** 아지메, 아재 살아 계셨으면 얼마나 좋아했겠나’‘이러고 있을 게 아이다 오랜만에 집안에 경사 났는데 잔치해야제먼 친척 형수님은 자기 일인 마냥 좋아했었어. 그래 아버님, 어머님 살아계셨으면 누구보다 좋아하셨겠지. 집안 친지들 불러 한턱 거하게 쏘셨겠지. 하지만 정식 입교도 안 된 상태, 가입교 훈련 일정이 남아 잔치는 무슨 잔치냐’‘그냥 주말에 집안 친척들과 밥이나 함 드시자며 달랬어.

 

 주말이 되었고 난 고향 마을로 향했지. 동네 입구엔 박땡땡 어르신 손자 박머시기군 해군사관학교 수석합격대형 현수막이 걸렸고 형수님 댁엔 친척 어르신들로 북적였어. 동네 친지 몇 분 모시고 밥이나 먹자는 자리가 출가한, 이제 할마시가 된 박씨 집안 딸들까지 대거 참석한 떠들썩한 잔치로 판이 커져 잠시 당황도 했지만 뭐 고마운 분들 이참에 밥 한 끼 대접한다 여겼어.

 

이런 경사가 어데 있노, 우리 집안에 판, 검사, 대학 총장은 있었어도 장군은 처음이다 아이가.”

 

 이제 노인이 되신 친척 형님께서는 일찍부터 술 마셨는지 얼굴에 불콰해져 나에게 잔을 권했지. 정식 입교도 하지 않았고 이제 곧 가입교 훈련받을 큰 애는 벌써 장군이 되어 있었고‘** 아재 살아 계셨으면 울메나 좋아 하셨겠노옛날 회상하며 눈시울 붉어졌을 땐 나 역시 살짝 가슴 시렸지. 시골 친척 어르신들과의 대화는 늘 즐거워. 내가 미처 몰랐던 옛날 얘기 -인민군이 잠시 동네 점령했을 때 얘기, 일본 유학에서 돌아온 성부자집 아들내미 얘기, 성 씨들이 주축인 마을에서 박 씨들이 기죽지 않고 살았던 얘기, 성 씨들에게 설움 받다 주환 아재 사법고시 합격하며 기 펴고 살게 된 얘기- 들을 땐 정말 재밌었어.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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